'말 많은 집 장맛은 쓰다' '장 단(甘) 집에는 가도 말(言) 단 집에는 가지 마라' '장맛이 변하면 집안 망한다'…. 속담이 입증하는 바와 같은 장(醬)에 들였던 공력과 그 가치를 숭앙했던 마음가짐은 이 시대에 얼마나 남아있는 걸까? 지난 1년간 전국의 된장 명장(名匠)들을 만난 이진랑(37)씨는 "우리 할머니 세대의 퇴장과 함께 맥이 끊길지 모를 비법을 지켜가는 이들에게 한없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저자는 인터넷 요리전문 사이트나 잡지·사보에 글을 기고하고, 2년 전부터 지역민방 프로그램에서 향토음식을 소개해 온 맛 칼럼니스트다. 그녀는 사찰음식 요리법을 배우며 조미료 없이 된장·간장·고추장만 갖고 감칠맛을 내는 오묘한 기술에 매혹됐고, 순수 자연발효한 재래식 된장과 밀가루를 섞어 단기숙성한 대량생산 제품이 맛의 깊이가 다름을 체득하면서 된장에 천착하게 됐다고 했다.
"발효 과정에서의 날씨 변화에 따라 장맛은 미세한 차이가 나고, 그러다 보니 같은 곳에서 만든 것도 해마다 독마다 차이를 냅니다. 취재하고 공부할수록 심오함을 느끼게 하는 세계였습니다."
프리랜서 사진가인 남편 이경우(39)씨와 함께 지난해 11월 행장을 꾸려 그동안 축적했던 정보를 따라 경기 양평 수진원, 경북 김천 정월농장, 경북 안동 제비원, 전북 군산 옹고집 장집, 충북 괴산 호산죽염식품 등 12곳을 찾아 다녔다. "명장들이 들어가는 재료는 숨김없이 보여줬지만, 그 배합 비율은 공개하지 않더군요."
책에는 선문답 같고 미련해 보이기까지 한 장인들의 철학이 담겨 있다. "반드시 무쇠솥에 장작불로 콩을 삶아야 콩물이 제맛을 냅니다"(강원 양양 '오색 옹기장' 최종대씨). "마음이 우주를, 첼로 소리를, 그리고 된장을 만들지요"(강원 정선 '메주와 첼리스트' 도완녀씨). "목돈 들여 푼돈 버는 녹차된장 일을 벌인 뒤 마누라가 눈물깨나 흘렸지요. 돈 생각하면 이 일 못해요"(전남 보성 '성원식품' 안효원씨)….
저자는 이 가운데 양평에서 된장을 제조·판매하는 수진원의 원칙과 정성을 최고로 꼽았다. "손수 재배한 콩 수확량에 맞춰 메주를 쑤지, 다른 곳에서 재료를 사는 경우가 없더군요. 욕심 부리지 않고 겸손한 장인 정신이 절로 배어났습니다."
책에는 장과 관련한 상식들도 실었다. '청국장의 유래' '미소(일본 된장)의 원조는 고려장(醬)' '장 담그기 좋은 날' '좋은 메주 고르는 요령' '된장을 항아리에서 발효시키는 이유'가 그것.
또 12개 명소의 약도·연락처·홈페이지도 실었다. "직접 밥을 지어 먹을 수 있는 곳도 있고, 관광지와 녹차 농장을 낀 보성 같은 곳도 있어 '가족 나들이'하기 적격입니다."
저자는 "장은 조미료·건강식품·상비약 등 다기능을 지닌 식탁의 근본이고, 장이 익는 것 자체가 자연의 조화를 가르친다"고 했다. "공해 때문에 메주 말릴 곳조차 없어 사먹게 되는 현실은 인정한다고 쳐도, 이왕이면 우리 콩으로 자연발효한 재래식 장을 드시길 권합니다. 오염·서구화로 위협받는 밥상을 지킬, 세계가 주목하는 자연식품 아닙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