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편성한 예산안이 당정 협의 과정 등을 거치며, 당초 각 부처가 요구하지 않은 지역 사업 성격의 예산들이 수천억원 추가돼 지난 10월 국회에 제출된 것으로 2일 밝혀졌다. 이에 따라 여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한 ‘지역구 챙기기’가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각 부처가 지난 5월 기획예산처에 요구한 부처별 예산안 내역과, 당정협의를 거쳐 정부가 국회에 낸 예산안을 본지가 입수해 비교한 결과, 정치인들의 지역구 사업 예산이 추가된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런 지역구 사업 예산 추가는 지난 7월 열린우리당이 정책조정위원회별로 기획예산처를 비롯한 정부 각 부처와 예산 관련 당정협의를 거치면서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예결위 관계자들과 예산 전문가들은 “보통 여야 의원들은 국회 상임위나 예결위 심의 과정에서 민원성 예산을 밀어넣는 경우가 많지만, 여권 실세 등 힘 있는 의원들은 정부의 예산편성 과정에서 미리 지역구 예산을 반영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정부 예산안에 추가된 지역구 예산의 대표적 사례는 익산~장수 고속도로 건설사업 관련 예산으로 당초 건설교통부가 요구한 사업비는 521억원이었으나, 당정협의를 거친 뒤 354억원이 늘어난 817억원으로 책정됐다. 이 사업은 국회 예결특위 위원장인 열린우리당 정세균 의원의 지역구(무주·진안·장수·임실)와 관련이 있다.
정동채 문화관광부 장관과 염동연 의원 등 지역구 의원 7명이 모두 열린우리당 소속인 광주의 ‘문화중심도시 조성 사업’은 당초 문광부가 500억원을 요구했다. 그러나 국회 제출 예산안에는 970억원이 책정됐다. 문광부측은 “부지 매입비가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산업단지 진입도로 건설 사업의 경우 건설교통부가 마산 등 세 곳에 20억원의 예산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반면, 당초 건교부가 돈을 달라고 하지 않았던 ‘반월 시화 산업단지 진입도로 건설’에는 20억원이 책정됐다. 반월 시화 산업단지 진입도로는 열린우리당 천정배 원내대표 지역구와 관련이 있는 사업이다.
문광부가 당초 요구하지 않았던 고양 일산 갑의 정발산공공도서관(열린우리당 한명숙 상임중앙위원), 여수의 환경어린이 도서관(김성곤·주승용 의원), 군포중앙도서관(김부겸 의원)의 설립 예산 11억원도 정부 예산안에 추가됐다. 서울 금천·성동·강서·서대문구 등의 ‘작은 도서관’ 설립 예산도 10억원이 더 반영됐는데, 역시 대부분 열린우리당 지역구이다.
열린우리당 모 의원의 가족이 단장으로 있는 정부 한 산하 기관에도 2억원의 예산이 추가로 배정된 것으로 나타났다. 권오봉 기획예산처 기획총괄과장은 “당정 협의 과정에서 당의 요구가 반영될 수도 있다”면서도 “같은 사업에 대해 각 부처가 5월 요구한 예산액과 10월 국회에 제출한 예산액이 다른 세부 내역은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옥동석(玉東錫) 인천대 무역학과 교수는 “정부가 전혀 검토하지 않았던 사업을 국회의원들이 지역구 챙기기 차원에서 예산안에 추가하는 경우가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나성린(羅城麟)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지역구를 위한 선심성 지원이나, 낭비성 지원이야말로 예산편성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대목”이라며 “경제활성화나 국가 경쟁력 강화 등과 관련 없이 늘어난 예산 항목은 삭감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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