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을에서 누구를 만나든 오늘이 며칠이냐고 물었을 때 바로 대답이 나오는 사람이 드뭅니다. 대개는 물어 본 저와 함께 앞뒤 날짜를 따져가며 오늘이 며칠인가를 짜 맞춥니다.
강원도 인제 땅에서도 첩첩산중인 이곳 설피밭에서는 변화를 느끼는 상대를 찾기 힘듭니다. 철이 바뀌는 걸 알 뿐입니다. 내가 뭘 해야만 하는 시간에 놓여 있지도, 뭘 해야할 사람과 같이 있지도 않다는 얘기입니다.
차를 타고 이웃집을 갈 정도로 인적이 드문 곳에서 자란 네 살배기 딸내미가 동화책에 나온 사람 그림을 보며 아는 사람을 꼽아도 채 열 명을 넘지 못 합니다. 고작해야 우리 식구 외에 계곡 건너 쌍둥이 아줌마, 윗집 이장아저씨라고 하고는 더 이상 헤아리는 대상이 없습니다.
얼마 전 집사람과 제가 용꿈을 꾸었습니다. 같은 날 그것도 귀하디 귀한 용을 보다니, 이 무슨 상서로운 조짐인가 싶어 잠자리를 털지 못한 채 비싼(?) 꿈의 활용을 의논하며 벅찬 흥분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그뿐입니다. 복을 나누거나 줄 아무 사람도 그날은 만나지 못 했습니다. 그리고 잘 풀렸음직한 그 어떤 일에도 나는 관계돼 있지 않았습니다.
흔히 용꿈 하면 찾게 된다는 행운의 상징 복권도 읍내까지 칠십 리를 나가야 하는 번거로움을 이겨내지는 못 했습니다. 그날 밤, 커다란 사고가 우리를 비껴가 오늘 한가할 수 있는 행운이 따랐다며 실없이 웃었습니다. 아마 내일도 한가하게 하루가 지나겠지요.
(김철한·농부·사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