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공동체의 태동 단계엔 우리나라가 깊숙이 개입됐다. 그리고 앞으로 공동체의 성공을 가늠하는 결정적 열쇠는 미국이 쥐고 있다. 동아시아공동체는 1990년 마하티르 모하메드 당시 말레이시아 총리가 미국·호주 등을 제외한 채 아시아·태평양지역 국가들만의 경제협의체 결성을 목표로 추진했던 '동아시아 경제회의체(EAEC)' 구상을 모태로 한다.
당시 마하티르의 구상에 대해 이 지역에서의 영향력 쇠퇴를 우려한 미국은 반대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일본도 소극적 태도를 보여 결국 마하티르의 구상은 좌절됐다. 그러나 동아시아 국가 간 교역과 투자확대로 상호의존이 심화되고 이에 따라 동아시아 경제권이 독자적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여론이 늘면서 다시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때마침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은 1997년 창설 30주년을 맞아 한·중·일 3국을 초청했고, 김대중(金大中) 정부는 2001년 동아시아공동체를 건설하자고 제안해 공감대를 이뤘다가 이번 라오스 '아세안+3(한·중·일)' 정상회의에서 구상이 본궤도에 오른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발전한 데에는 1990년대 말까지 반대하던 미국이 '미국과 아시아 국가의 관계를 해치지 않는 것이라면 공동체 참가는 각국의 자유'라는 쪽으로 입장을 바꿨고, 특히 최근엔 이라크 사태로 미국의 아시아 지역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떨어진 것이 영향을 미쳤다. 콜린 파월 국무장관은 지난 8월 "아시아가 다른 틀(동아시아공동체)을 마련하려는 이유가 있다는 점을 이해한다"고 말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