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전 조선의 여성을 피폐하게 만드는 공창과 인신매매 폐지, 여성 노동자의 임금 차별 철폐를 주장한 여성이 있었다. 기자가 직업이었던 그는 기생 차림으로 거리를 누볐고, 허름한 행랑어멈으로도 분장했다. 일제시대 가장 고통받았던 서민 여성들의 삶을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여기자 추계(秋溪) 최은희(崔恩喜) 선생이 바로 그 사람이다. 20년 전 그는 생전에 글 써서 모은 전재산 5000만원을 내놔 '최은희 여기자상'을 제정했고, 해마다 그 해 최고의 여기자를 선정해오고 있다. 올해는 그의 탄생 100주년. 23일 오전11시 서울 덕성여대 평생교육원에서 열리는 '최은희 탄생 100주년 기념 학술 세미나'는 여성 언론인이었던 동시에 일제하 여성독립운동 모임인 '근우회'를 조직했던 진보적 여성운동가 추계의 생애와 업적을 되짚어보는 자리다.
'여성 지위 향상에 길을 닦은 최은희'란 제목으로 논문을 발표할 이배용 이화여대 사학과 교수는 "여성의 사회 진출, 경제활동이 활발해지던 시기에 최은희는 기자라는 새로운 전문직종에서 여성의 위상을 뚜렷이 정립한 주역"이라고 평가한다. 조선일보 기자로 활약했던 1924~1931년 최은희가 취재해 작성한 기사들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다. 대구 사창가와 남정촌 빈민굴을 취재해 소외 계층의 삶을 소개하는가 하면, 1924년 11월부터는 '가정부인란'을 신설, '첫길에 앞장선 이들'이라는 제목으로 직업과 사회활동을 병행하는 신여성 인물을 26회 연재했다.
'추계 최은희 선생의 삶과 사상'이란 제목의 논문을 발표할 노영희 동덕여대 교수는 "최은희를 여기자만이 아닌, 여성운동가이자 항일운동가로 재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3·1운동에 뛰어들어 16세의 나이로 옥살이를 한 점, 1927년 여성해방운동조직체인 '근우회'의 창립멤버로 합류해 여성에 대한 사회적·법률적 차별 철폐 운동을 전개한 점, 1929년 광주학생운동에서 비롯된 여학생 운동을 적극 지원한 점 등을 높이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추계문화사업회는 선생이 살던 서울 행촌동 자택에 '최은희 박물관'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장남 이달순 전 수원대 교수는 어머니 최은희를 이렇게 회고했다. "봉급쟁이 아들한테 쌀 사와라, 구들장 고쳐라 주문하시면서도 당신이 평생 모은 돈은 고스란히 여기자상에 내놓으셨어요." 미순(전 동덕여대 교수), 혜순(이화여대 교수) 등 3남매에게 "개척정신과 창조정신이 무엇인지 당신의 삶 자체로 일깨워주셨다"는 것이 어머니 최은희에 바치는 회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