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선 정면 관중석에 빨간색 점퍼를 입은 여성이 앉아 있으면 1등으로 들어올 것. 오른손에 경륜잡지를 말아들고 있으면 1번 선수와 함께 도착하고, 잡지를 펴들고 있으면 2번 선수와 함께 도착할 것….’

18일 경찰에 붙잡힌 현직 경륜선수 조모(25)씨와 사설경륜조직 총책 조모(34)씨 사이에 정해져 있던 ‘사인’의 일부다. 선수 조씨는 지난 8월부터 약속한 사인에 맞춰 경기에 임했고, 컨디션이 특히 좋은 날엔 미리 전화를 걸어 알리는 ‘배려’도 잊지 않았다. 덕분에 총책 조씨는 단승식의 경우 50% 가까운 승률을 올리며 수천만원의 배당금을 챙겼다. 선수 조씨는 그 대가로 1500여만원의 금품을 받아 챙겼다.

총책 조씨는 지난 2001년 무렵에도 현직 경륜선수 강모(24)씨와 비슷한 방식으로 승부조작을 벌여 수천만원의 배당금을 챙긴 것으로 밝혀졌다. 이후 강씨가 부상으로 기량이 떨어지자, 강씨로부터 선수 조씨를 소개받아 승부조작을 재개한 것이다.

7명이 출전하는 경기에서 선수 한 명을 매수했다고 해서 어떻게 승부조작이 가능할까. 이들은 “비슷한 실력의 선수들끼리 조가 짜이고, 100분의 1, 2초 차이로 승부가 판가름 나는 경륜의 특성상 실력 있는 선수가 마음만 먹으면 다른 선수의 순위에도 어느 정도는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그러나 상식적으로 다른 선수들과의 교감 없이 승부를 조작하기는 어렵다고 보고, 선수들과 경륜본부 관계자 등을 상대로 계속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다.

총책 조씨는 이와 함께 사설경륜조직을 운영하면서 18억원 상당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도 받고 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경주권을 구매할 경우 5만원 이상 구입이 금지돼 있다는 점에 착안, 거액을 베팅하려는 관중들을 끌어모은 뒤 경기 결과에 따라 배당금을 지급했다.

조씨는 경륜운영본부와는 달리 세금을 공제하지 않은 전액을 당첨금으로 지급하고, 낙첨되더라도 베팅액의 20%를 돌려주는 방식으로 도박꾼들을 끌어모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공무원 신모(43)씨 등 10명이 적게는 수십만원, 많게는 1700만원까지 돈을 걸었다.

서울지방경찰청 형사과는 18일 이 같은 혐의로 조씨 등 사설경륜조직 일당 5명과 경륜선수 2명을 구속하고, 도박꾼 등 10명을 불구속 입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