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화가 다비드가 1800년 그린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은 나폴레옹의 대표적 초상화로 꼽힌다. 앞발을 들고 금방이라도 산 정상을 향해 질주할 것 같은 말에 탄 나폴레옹이 오른손을 쳐들어 진군 명령을 내리고 있는 모습은 프랑스혁명 후 유럽을 평정한 영웅의 이미지 그 자체다. 몸매도 늘씬하고 잘 생긴 얼굴이다. 그러나 실제 나폴레옹은 키도 작고 볼품 없었다고 한다. 또 그는 말이 아니라 노새를 타고, 부대가 먼저 넘어간 며칠 후 따로 안전하게 알프스 생베르나르산을 넘어갔다.

“그의 얼굴은 희고 입은 주걱턱이라고 부를 만큼 흉했다. 원래 눈썹은 밀고 1인치 정도 높여서 눈썹을 그렸다. 숫기가 없고 소심한 성격임에 틀림없는 그의 손에 영국 여왕의 친서를 건넸다.” 1868년 5월 메이지 일왕을 만난 영국 외교관 어니스트 새토는 그의 외모를 이렇게 묘사했다. 그로부터 5년 후 전 국민에게 알려진 메이지 일왕의 초상 사진은 극적인 변모를 보여준다. 각종 장식이 달린 서양식 군복에 구두를 신고 긴 칼을 손에 쥐었다. 콧수염을 기르고 전면을 응시하는 그의 눈에는 위엄이 넘쳐난다.

초상화를 뜻하는 영어 ‘portrait’는 ‘끌어내다’ ‘노출시키다’는 뜻을 가진 라틴어 ‘protraho’에서 온 것이다. ‘알프스를…’에서 화가는 실제 나폴레옹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나폴레옹의 이미지를 ‘끌어내’ 그렸던 것이다. 1873년의 일왕 초상 사진은 메이지유신 주체 세력들이 일본 국민들에게 심어주고 싶은 남성적 서양적 군주의 이미지였다. 이런 속성 때문에 초상화는 절대권력이 자신을 우상화하기 위한 상징 조작 수단으로 애용돼 왔다.

북한 만수대창작사에서는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초상화를 ‘1호 작품’이라 부른다. 두 사람의 초상화는 일단 그려지면 살아 있는 수령과 다름없이 간주된다. 각 가정마다 초상화가 걸린 벽에는 다른 사진을 못 건다. 군부대가 야외 작전나갈 때도 초상화를 가져간다. 작년 대구 유니버시아드대회 때 온 북한 여자 응원단이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진이 담긴 플래카드가 비를 맞고 있는 걸 보고 울고불고 했던 일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이토록 신성시되던 김정일 위원장 초상화가 북한의 주요 시설에서 철거되고 있다고 한다. 우상 숭배의 중단인가, 권력 변동인가 추측이 무성하다. 1992년 파리 미술견본시장(FIAC)에 구소련에서 날리던 예술가들의 레닌 흉상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와 팔리지도 않고 애물단지로 전락한 일이 있다. 권력과 초상화의 관계를 알려준 사례였다.

(김태익· 논설위원 · tikim@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