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나는 일본 도쿄에서 일본 문화청 장관과 내년 한·일 수교 40주년 기념 문화교류를 협의하던 중 서울 종묘(宗廟)의 어도(御道)에 깔려 있는 박석(薄石)이 굴착기에 의해 약 100장이 깨졌다는 보고를 받고 순간 망연자실했다. 그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데!
나는 곧바로 조선일보 오피니언 페이지의 ‘여론 광장’에 사죄의 글을 전송하고, 이튿날 귀국 즉시 종묘로 향해 현장을 확인한 후, 오늘 이 순간까지 올바른 복원을 위해 전문가들과 머리를 맞대고 연구 중에 있다.
그런데 이상할 정도로 박석에 관한 연구를 거의 찾아볼 수 없고, 또 많은 사람들이 궁궐과 능묘 건축에서 박석의 미학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지 못함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본래 ‘박석’이란 문자 그대로 얇은 돌판으로, 조선시대의 독특한 도로 포장 방식이었다. 서울의 옛 지명을 보면 ‘박석고개’가 여럿 있다. 서오릉으로 가는 불광동 고개, 창경궁에서 성균관으로 가는 명륜동 고개, 헌인릉으로 가는 내곡동 고개 등이 모두 박석이 깔려 있던 박석고개다.
박석은 크게는 구들장, 보통은 빨래판만한 넓적한 돌판으로, 두께는 보통 네 치(12cm)쯤 된다. 박석의 표면이 울퉁불퉁한 것은 미끄럼도 방지하고 햇살을 난반사시켜 눈부심을 막아준다.
박석이 건축적으로 가장 탁월하게 실현된 곳은 종묘 정전(正殿)의 앞마당인 월대(月臺)와 경복궁 근정전의 아래뜰이다. 자연스러운 박석들이 마치 조각보를 만들 듯 이를 맞추며 천연스럽게 돌로 포장되어 있는 것을 보면 너무도 현대적이어서 21세기의 건축가들도 감탄에 감탄을 더한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이 박석의 미학을 아름다움과 슬기로움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불성실의 소치가 아니냐고 묻곤 한다. 그럴 때면 나는 창덕궁 인정전의 정연한 돌포장을 가 보라고 권한다. 인정전 앞마당 역시 옛날엔 박석 포장이었다. 그런데 일제시대에 일본인들은 그것이 맘에 안 들었는지 이를 모두 걷어내고 잔디를 심었었다. 훗날 우리가 다시 창덕궁을 정비·복원하는데, 박석의 기술도 없고 재료도 못 구해서 지금처럼 화강암 사각 돌판을 깔아놓아 한마디로 멋이 없다.
이런 박석은 궁궐과 왕릉의 어도(御道)와 신도(神道)에서도 멋지게 구현되었다. 이번에 훼손된 종묘의 어도 역시 신향로(神香路), 어로(御路), 세자로(世子路) 등 3단의 박석길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지금의 종묘 어도가 깨진 것이든 성한 것이든 박석들이 가지런히 이를 맞춘 것이 아니라 마치 징검다리 놓듯이 듬성듬성 깔려 있는 것이다. 길도 휘어져 있고, 삼도(三道)의 가운뎃길이 높지도 않다.
뭔가 잘못이 있을 것 같아 자세히 조사해 보니 지금 종묘 정문의 어도는 1972년에 정비 작업을 하면서 부실 시공된 것이었다.
우리는 차제에 이것을 바로잡기로 했다. 옛 기록을 찾아 보니 1726년 영조 때 제작된 ‘종묘의궤속록(宗廟儀軌續錄)’에서 3도의 정연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대로만 한다면 종묘의 어도는 비로소 제 모습을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이 검은 듯 차분한 잿빛 박석의 산지(産地)가 어디인지 아직 모르겠다. 포천, 양구, 음성의 돌이 비슷은 하나 그런 맛이 전혀 안 난다. 이제 그것만 찾아내면 제대로 복원하겠는데…. 누구, 아는 분이 없을까.
(유홍준 · 문화재청장·미술사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