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노무현 대통령이 LA에서 행한 북핵문제 연설에 대해 미국 국무부는 4일간 아무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가, 16일 본지 기자가 전화로 다시 문의하자 "국무부의 공식 입장"이라며 견해를 밝혔다. 국무부 관계자는 미리 서면으로 준비된 문장을 읽었다.

내용은 외견상 중도적이며 매우 조심스러웠다. 절반 가량을 "노 대통령이 …라고 말했다"는 식으로 인용 서술했으며, 국무부 자신의 입장 표명은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몇 구절엔 절제된 표현 속에서도 분명히 감지되는 '가시'들이 박혀 있었다. 외교적 어법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 정도로 양국 정부 간의 이견이 공개적으로 드러난 경우는 적어도 근래의 한·미 관계에서는 찾기 어렵다.

요컨대 북한의 입장을 일부 두둔하고 미국의 노선에 이의를 제기한 듯한 노 대통령의 견해를 반박하는 뉘앙스가 다분히 깔려 있다.

국무부가 서두에서 "노 대통령이 북한에 대해 핵무기 프로그램의 포기를 요구한 것을 알고 있다"고 밝힌 것은, 한국 정부 역시 북한 핵을 반대하는 것은 확실한데 무슨 딴소리가 있을 수 있느냐는 점을 우선 기정사실로 못박아두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이 연설에서 "우리는 북한 핵보유를 결코 용납 못하며 6자회담이 성공하기 위해 북한은 핵을 포기해야 한다"고 말한 점을 대전제로 상기시킨 것이다.

이어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은 세계적인 핵확산 방지 노력과 우리의 동맹 및 우방국들에 대한 위협"이라고 지적한 두번째 문장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이는 '북한 핵무기가 공격용 또는 테러 지원용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요지의 노 대통령 견해에 정면으로 이의를 제기한 것이며,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이 "외부 위협으로부터의 자위수단"이라는 북한 주장이 일리가 있다는 노 대통령의 발언에 동의할 수 없다는 선을 그은 것이다.

국무부의 이 지적은 '북한은 핵무기와 핵물질을 테러 집단이나 테러 지원 국가에 팔아 넘길 수 있는 집단이고, 따라서 북한의 핵개발을 묵인할 수 없다'는 논리를 재강조한 것이다.

국무부는 노 대통령이 "북한은 안전이 보장되고 개혁과 개방이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이 보이면 핵무기는 포기할 것이므로, (그럴) 기회를 주자"는 요지로 한 제안에 대해서도, 6자회담에서 미국이 북한에 대해 여러 제안들을 해 놓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킴으로써, 새로운 접근 가능성을 사실상 일축했다.

마지막으로 "노 대통령의 연설에는 우리가 가까운 장래에 한국의 고위관리들과 토론할 기회를 갖기를 희망하는 요소들이 있다"고 한 것은 어쩌면 가장 뼈 있는 대목으로 읽힌다. 한국의 시각에 대해 총체적으로 이견이 적지 않음을 시사했기 때문이다.

국무부가 노 대통령의 연설에 대해 나흘 동안 침묵한 것은 그동안 내부에서 심도있는 조율이 있었음을 시사한다. 미국측 외교 소식통은 "노 대통령의 발언이 기분 좋은 것은 아니지만 미국도 가볍게 대응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전했다. 미국 정부의 보다 구체적인 반응은 오는 20일 노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에서 나올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워싱턴=허용범특파원 heo@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