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행정수도 이전 특별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 이후 정치권과 사회 각계의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행정수도 이전 대상지였던 충청지역에서는 이전사업 중단을 규탄하는 집회가 끊이지 않고 있으나, 정부와 정치권은 책임있는 처방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해결책 모색의 일환으로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기획을 마련했다. 우선 할 말이 가장 많을 심대평(沈大平) 충남도지사 인터뷰부터 시작한다.
< 진행=金亨基 사회부장 >
―헌재의 위헌결정(10월 21일)이 나온 지 한 달이 가까워 온다. 도민들의 반발이 계속되고 있는데, 도지사로서 헌재결정의 의미를 어떻게 보나?
“헌재 결정은 행정수도의 당위성을 부정하거나 행정수도 건설 자체를 근본적으로 막는 것이 아니다. 법 절차상의 하자를 지적한 것이다. 위헌 결정 이후 행정수도 건설이 무산되는 것처럼 언론보도가 나오는데 그것은 잘못된 이야기다.”
―하지만 헌재결정으로 행정수도 추진이 현재로서는 불가능하게 됐다. 현실적으로 차선의 요구가 있다면?
“행정수도 건설의 본질과 취지를 생각하면 대안(代案)은 있을 수 없다. 원칙에 충실해지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원칙에 충실해진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행정수도 건설의 당위성과 본질을 훼손하지 않고, 국회에서 행정수도 이전을 다시 논의하자는 것이다. 수도이전 논의는 이미 40년 전인 1964년부터 시작된 사안이다. 수도권 과밀화 때문이다. 수도권에 인구가 집중되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40여년간 500여개의 대안이 나왔지만 서울은 계속 비대해져만 갔다. 서울이 비대해질수록, 정부는 규제를 강화할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됨으로써 서울과 수도권지역의 경쟁력은 국제사회에서 계속 떨어졌다. 때문에 행정수도 건설은 충청권 문제가 아닌, 국가균형발전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그런데 정부와 정치권이 이 같은 당위성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제대로 이뤄내지 못해 지금과 같은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국민적 합의를 도출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가?
“처음부터 다시 접근해야 한다고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중구난방식 대안 제시가 아니라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수도권 시민들에게 서울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행정수도 이외에는 대안이 없겠다는 것을 설득시켜야 한다. 예를 들어 경기도는 서울이 옮겨가면 오히려 크게 혜택을 볼 수 있다. 삼성전자가 충남 아산에 단지를 만드는 것은 기존의 수원단지에 공장을 확장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단지가 집적화되면 경쟁력이 있는데, 수도권의 규제정책 때문에 오히려 경기도가 피해를 보는 것 아닌가.”
―그런 장기적인 대책 외에 당장 충청도민들을 설득할 단기적인 대책도 필요할 텐데.
“물론이다. 행정수도 건설계획을 믿고 이주계획을 세우고 인근지역에 땅을 사놓은 주민들이 많다. 땅이 자꾸 오르니까 더 오르기 전에 사놓아야겠다는 생각에서다. 따라서 정부는 행정수도 후보지 2160만평을 예정대로 매입해 주어야 한다. 서울의 강남구와 송파구 합친 정도 넓이다. 비용은 4조~5조원쯤이면 될 걸로 추산된다. 그것이 최소한의 요구다. 매입 후의 구체적 활용방안은 전문가와 협의하면 충분히 만들 수 있다.”
―일부에서 거론하는 행정특별시나 기업도시 같은 대안들은 어떤가?
“그런 섣부른 대안은 똑같은 잘못을 범하게 될 것이다. 수도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천에 부처의 반을 옮겨 행정도시 건설하지 않았나. 그런데 과천에서 청와대 가는 데 1시간30분이나 걸려 국무회의가 열리는 날은 장관이 일을 할 수가 없다. 이런 불합리한 모습을 보면서 충청권에 부처 몇 개 옮기자고 하나? 그런 발상은 단견이고 일시적으로 여론을 호도하기 위한 정략적 접근이다.”
―결국 국회에서 행정수도 건설을 장기적으로 다시 논의하고,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지면 헌법을 개정해서 추진하자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는데.
“그렇다. 행정수도는 본질문제로 접근하자는 것이다. 만약 국회 논의과정에서 (행정수도 건설 외에) 다른 대안이 나오면 국민합의를 거쳐 그쪽으로 추진하면 되는 것이다. 졸속으로 결정하고, ‘신중치 못한 결정이었다’고 사과하고 끝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12월 10일 행정수도와 관련한 정부대책을 발표한다고 하는데.
“원칙을 고수한다는 점을 천명하는 외에, 대통령이 또 다른 대안을 직접 제시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지금 상황에서 뭔가 대안을 내면, 반대측에서는 또다시 헌재 결정을 피해나가기 위한 편법이라고 비난할 것이다. 그러면 아무것도 안 된다. 이 문제는 이제 정치권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그래야 문제를 근본적으로 치유할 수 있다고 본다.”
―그동안 정부와 정치권에서 행정수도를 추진·논의하는 과정에서 문제는 무엇이라고 보나?
“행정수도가 선거에서 큰 위력을 발휘하자 이를 정치적인 이해로 대항하려는 세력이 생긴 것이 문제다. 이것이 헌법소원으로까지 이어졌다고 본다. 또 정부가 국민들을 설득하는 데 있어서 정지작업이 필요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누구 말처럼, 천도(遷都) 수준으로 가려면 좀더 많은 논의를 거쳤어야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보다 적극적으로 반대론자를 끌어냈어야 했다. 그러나 ‘너희는 떠들어라, 우리는 간다. 우리가 옳은 것이야’ 식의 추진이었다. 그러다 보니 지금은 반대측에서 ‘대안을 내놔 봐라. 위헌까지 이끌었는데 충분히 이길 수 있다’는 논리로 맞서지 않나. 점점 극대극으로 가서 혼란을 자초하고 있다.”
―헌재결정 이후 충청주민들의 마음의 상처가 깊은데.
“주민들 사이에 정치권에 농락당했다는 피해의식이 생겼다. 충청사람들은 이해보다는 명분을 중시한다. 그동안 행정수도에 대해 긍정적으로 적극적으로 노력해왔는데, 어느 날 보니 정치권에 의해 농락당했다는 상황판단을 하게 되면서 분노하는 것이다.”
―최근 궐기대회에서 헌재 재판관들에 대한 인신비방이 나타나고 어떤 여당 국회의원은 국회에서 헌재결정을 사법쿠데타라고 공격했는데.
“중요한 국정문제를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이 문제로 헌재 재판관을 비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민심은 이성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도민들이 헌재결정 직후 감정이 격앙돼서 그랬는데, 이제는 그런 감정을 누그러뜨리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다.”
―어떤 형태로든 뭔가 대안이 나오지 않으면 감정을 누그러뜨리기 어렵지 않을까?
“되풀이하지만 ‘장기적으로 행정수도 재논의하고 단기적으로 후보지 부지를 매입하라’는 것이 내 일관된 소신이다. 그래야 국가가 안정된다. 어려울수록 원칙으로 가야 한다. 편법으로 가면 문제가 더 복잡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