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
기독교 정신에 입각, 우리 농촌을 젖과 꿀이 흐르는 복지(福地)로 만들고자 했던 일가(一家) 김용기(金容基·1912~1988) 장로가 경기도 하남시 풍산동에 세운 ‘가나안농장’이 17일로 창설 50주년, 희년(禧年)을 맞는다.
가난을 무찌르고 정신문화를 지킬 제4군(軍)인 농군(農軍)을 육성하기 위해 1962년 이곳에 설립된 ‘가나안농군학교’는 지금까지 정치인, 경제인, 군인, 체육인, 연예인과 학생 등 61만명이 수료(원주 제2농군학교 포함)했다. 거대한 농군(農軍) 세력을 키워낸 것.
김 장로의 가나안정신은 현재 그의 아들들인 김종일 가나안복민회 이사장, 김평일 제1가나안농군학교장, 김범일 제2가나안농군학교장 등이 이끌고 있다. 김종일 이사장은 “아버님은 1930년대 이후 3차례에 걸친 이상촌건설, 공동농장 등의 실험 끝에 이곳에서 농민운동을 시작하셨다”고 회상했다.
당시 이곳의 지명은 황산(荒山), 문자 그대로 황폐한 곳이었다. 토질이 나빠 벼농사도 짓기 힘든 이 곳에서 그를 따르는 청년들과 가족만 이끌고 정착해 농장을 개척하면서 황폐한 땅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만들자는 뜻에서 ‘가나안’이란 이름을 붙였다. 김종일 이사장은 “밖으로는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는 구호를, 안으로는 철저한 근검절약으로 직접 모범을 보이셨다”고 말했다.
‘음식 한끼에 반드시 4시간씩 일하자’ ‘버는 재주 없거든 쓰는 재주도 없도록 하자’ ‘물질의 빚이나 마음의 빚을 지지 말자’ ‘하라고 하는 국민이 되지 말고 하는 국민이 되자’ 등 지금도 입소자들이 실천하고 있는 가나안농군학교의 생활헌장은, 가족들에게 가장 먼저 적용됐다. 김 이사장 등은 “당시 하루 12시간이 아니라 16시간씩 일했고, 치약은 한 번에 3mm, 세숫물도 대야의 3분의 2 이상 못 썼다”고 말했다. 김 장로 가족의 가나안농장 모범사례는 차츰 주변에 알려졌고, 당시 광주군에서 공무원을 가나안농장에 보내 교육을 받도록 한 것이 가나안농군학교 설립으로 이어졌다. 박정희 대통령이 새마을운동을 시작할 때 가나안농군학교의 정신을 모델로 삼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
김 장로가 농군학교를 설립할 때는 인구의 대부분이 농민이었고, 가난과 배고픔 극복이 절대 과제였다. 반세기 만에 세상은 완전히 바뀌었지만, 농민학교에는 요즘도 2박 3일, 4박 5일 코스 입소문의가 끊이지 않는다. 기업체, 관공서도 단체로 직원들을 보내온다. 김평일 교장은 “나라와 가정, 사람에 대한 사랑, 땀흘려 일하는 정신, 절약정신, 효 윤리 등의 농군정신만은 여전히 필요한 가치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가나안농군학교는 최근 해외로 눈을 돌려 가나안농군정신을 수출하고 있다. 공산권, 이슬람권 국가 등 현재 11곳에 해외가나안농군학교가 설립돼 한국적 정신문화뿐 아니라 간접적인 선교에도 앞장서고 있다.
김종일 이사장은 “가나안 교육의 근본은 사람들의 마음밭에 씨를 뿌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곳에서 가나안정신의 씨를 받아간 사람은, 빠르고 늦는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언젠가 여건이 맞게 되면 싹을 틔운다는 이야기다. 김평일 교장은 “한 가족에서 출발한 가나안이 반세기 만에 세계 11개국까지 뻗어갈 수 있었던 데 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린다”며 “희년을 맞아 가나안정신을 어떻게 현대사회에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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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창설 50주년을 맞아 기념예배와 세미나가 오늘(13일) 경기도 하남시 제1가나안농군학교에서 열린다. 김삼환 명성교회 목사가 설교하고 조향록 목사(전 한신대학장)가 축도하며 세미나에서는 김조년 한남대 교수와 이한기 농촌진흥청 농촌자원개발연구소장이 주제 발표한다. (031)793-61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