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했다. 북핵 문제는 누가 당선되든 원점에서 재출발해야 할 상황이었기에, 한국인으로서는 제2기 부시 행정부의 북핵 정책이 초미의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우선 강경책을 예상할 수 있다. '반(反)확산 안보 구상(PSI)'을 본격화하여 북한 출입 선박들을 정선(停船)·검색하고 대량살상무기 관련 화물들을 압류한다면 북한이 강력히 반발할 수 있다. 물론 부시 대통령도 일단은 '6자회담 틀 안에서의 외교적 해결'을 강조하겠지만, 새롭게 4년의 임기를 보장받은 이상, 여차하면 강경책으로 선회할 소지가 많아졌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첫째, 반테러·반확산이라는 미국 신전략의 목표는 불변이며, 냉전체제 소멸 이후 미국은 대량살상무기의 개발을 고집하거나 테러 세력에 전파할 가능성이 있는 나라들을 주목하고 있다. 지금은 북한·이란 등 핵개발 국가들이 미국의 주적(主敵)일 수밖에 없다. 이 점은 케리 후보가 당선되었더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둘째, 부시 대통령은 북핵 문제가 과거에 비해 악화되었고 미해결 상태로 시간이 흐를수록 북핵의 실체가 더욱 커진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1990년대 제1차 핵위기는 북한의 플루토늄 생산 가능성을 놓고 빚어진 사태였다. 지금은 많은 전문가들이 플루토늄탄(彈) 보유를 기정사실로 믿고 있으며, 2002년 핵동결 해제 이후 폐연료봉에서 추가적인 플루토늄을 생산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6자회담만 고집하면서 미·북 직접대화를 단절하여 오히려 북한에 더 많은 핵무기를 만들 시간을 주었다"는 케리 후보의 질책을 기억하는 부시 대통령으로서는, 실기(失機)하면 북한이 핵강국으로 등장한다는 강박관념하에 '시간과의 싸움'에 승부를 걸 가능성이 높다.
셋째, 우라늄 농축 문제는 언제든 6자회담을 부셔버릴 폭발력을 지니고 있다. 북한은 농축시설의 존재를 부인하지만, 파키스탄이 북한으로부터 미사일 기술을 전수받은 대가로 농축관련 부품과 노하우를 건네주었다는 정황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그래서 미국은 북한의 실토를 요구하고 있다.
넷째, 북한은 스커드 미사일과 노동 미사일을 이란의 샤하브(Shahab) 미사일 또는 파키스탄의 가우리(Ghauri) 미사일로 둔갑시키는 등 국제사회의 비난을 무릅쓰고 미사일 수출을 지속해왔다. 북한의 미사일 확산 행위는 PSI를 유발한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이러한 때에, 한국은 미국과의 정책 조율을 준비하면서 모든 가능성에 대비하는 자세를 견지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는 6자회담을 통한 핵폐기라는 최상의 시나리오, 일단 핵동결 합의로 급한 불을 끄는 중간급 시나리오, 북한의 핵실험 강행으로 동북아의 전략 지도가 바뀌는 최악의 시나리오 등이 모두 포함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에 앞서 북핵 문제가 '감기'인지 '암(癌)'인지를 재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건강을 유지하면 저절로 떨어지는 감기와 같은 존재라면 햇볕론이 옳다. 하지만 실기하면 생명을 위협할 암을 이런 식으로 접근한다면 '후환을 다음 세대와 다음 정부에 떠넘긴 채 자신들의 임기 내 남북화해의 실적만을 추구한 사람들'로 비난받을 것이다. 반대로 감기를 암으로 알고 대응한다면 '공연한 과잉대응으로 민족 간 화해협력을 훼방한 사람들'이 되고 만다. 어느 쪽이든 준엄한 역사의 심판을 각오해야 한다. 북한을 주적으로 보는 미국의 전략이 불변인 상황에서, 그리고 북핵을 암으로 보는 부시 대통령이 재선된 시점에서, 한국의 정책 결정자들이 고민해봐야 할 대목이다.
(김태우·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