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미국 대통령의 재선을 계기로, 여권에서 대미(對美) 외교라인의 주도세력을 교체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5일 오전 이해찬(李海瓚) 총리와 이부영(李富榮) 당 의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고위 당정회의에선 "우리의 대미 라인이 구(舊)여권 중심으로 돼 있어서 새롭게 구축되어야 한다는 데 공감을 이뤘다"고 참석자들이 전했다. 또 "대미 라인이 과거부터 오랫동안 구여권 쪽에 있다 보니, 김대중·노무현 정권으로 주류가 바뀌었는데 대미라인은 여전히 구여권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는 지적이 있었고, "(이 같은 대미 라인 주류세력 교체에 관해) 미국측도 그런 희망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는 말도 나왔다고 한다. 한국의 여권을 본격적으로 미국에 알릴 수 있도록 대미 외교라인을 재편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런 주장이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니다. 여권 내부적으로는 오래 전부터 거론돼온 문제다. 여당 기획위원장인 민병두(閔丙?) 의원은 최근 당 상임중앙위 회의에서 "30~40년간 정권교체 없이 한쪽이 정권을 장악하면서 미국과 접촉이 가능한 인맥도 한쪽에만 집중됐다"며 "이젠 '개혁·대북협력적' 시각을 가진 한국의 새로운 집권측의 시각을 미국에 알릴 수 있는 통로가 확보돼야 하고, 인맥을 키워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실제 지난 7월 미국을 방문한 신기남(辛基南) 당시 당 의장이나 지난 9월 방미(訪美)한 천정배(千正培) 원내대표도 '새로운 한국의 여권에 대해 미국측이 갖고 있는 오해와 편견'에 대해 우려를 표시했다. 여권 고위인사들은 늘 미국측 관계자들을 만나면, 한국 내의 주도세력 교체를 설명하면서 미국측의 인식 변화를 요구하곤 한다.

그러나 '대미 라인의 주도세력 교체'가 생각처럼 쉽지는 않다는 데 여권의 고민이 있다. 우선 여권 내에서 이를 이끌 만한 '미국통(通)' 내지는 '대미 외교역량 부재'가 문제다. 열린우리당만 놓고 봐도, 대미통으로 미국에서 대학 교수를 지낸 3선의 유재건(柳在乾) 의원과 외교관 출신의 정의용(鄭義溶) 의원, 미국 교수 내지는 유학 경험이 있는 김성곤(金成坤), 채수찬(蔡秀燦) 의원, 청와대 근무 시절 외교·안보 분야를 다뤘던 윤호중(尹昊重)·최성(崔星) 의원 등 손으로 꼽을 수 있는 정도다. 민병두 의원은 "대미라인의 주도세력 교체는 시간을 두고 장기적으로 추진할 과제"라고 했다. 한 여당 초선의원은 "민간 차원의 한·미 학술행사에 가봐도 늘 구여권 인사가 주를 이루지만, 다른 대안이 없다는 데 고민이 있다"고 했다. 장기적 과제로 정부·여당이 주도하는 재단을 만들어 대미 인맥을 양성하거나 미국측과의 상시적 접촉 채널을 확보하는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다.

그래서 5일 고위 당정 회의에선 당장 급한 '대미 의원외교의 회복'에 초점이 맞춰졌다고 한다. 국회 통일외교통상위 소속 열린우리당 간사인 유선호(柳宣浩) 의원은 "현재의 의원외교가 안정성과 지속성이 부족하다는 정부측 지적과 당쪽의 자성(自省)이 있었다"며 "여야 공동으로 대미 협력 외교체제를 갖추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현재 국회 차원에선 4개의 의원 외교협의회(한·미, 한·중, 한·러시아, 한·유럽)와 76개국과의 친선협회가 있다. 그러나 여야 간의 자리다툼으로 17대 국회에선 별도기구인 한·일 의원연맹을 빼곤 한·미 의원외교협의회 등 다른 단체들은 결성도 못한 상태다. 여권은 한나라당과 가능한 한 빠른 시일 안에 한·미 외교협의회 구성 등을 마무리짓고 본격적인 대미 의원외교에 나선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