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형씨


나는 나름대로 어느 종교에서 제시하는 세계관과 삶의 지표에 공감하고 있고, 앞으로 기회가 되면 그 길을 더 깊이 추구해 보고 싶은 생각도 있다. 그러나 신앙심의 표현이 지나치다 싶은 사람을 보면 경계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믿음에 대한 감격과 환희에 겨워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지 않거나, 때로는 강요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런 것이 병적으로 더 깊어지면 신앙이 다른 사람을 모두 악마로 보기도 하고, 다른 종교의 상을 때려 부수거나 성전에 불을 지르기도 한다.

정치인이 자신의 편협한 이상이나 이념을 신앙처럼 신봉하며 주위를 의식하지 않고 현실을 재단하려 할 때는 문제가 더 복잡해진다. 현실은 종교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선악의 구분이 명쾌하지 않고, 인간은 종교에서 낙관적으로 바라보는 것보다 실상 훨씬 더 복잡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누구도 완전한 승리자가 될 수 없고, 세상의 원리도 인간의 본성도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근본주의적인 확신이 지나쳐 초래된 극단적인 불행을 우리는 문화혁명기의 중국에서 보았고, 크메르 루주 치하의 캄보디아와 탈레반 치하의 아프가니스탄에서도 보았다. 요즘 자주 듣는 '선을 독점하고 있다'는 확신, 다수의 이견을 무시하고 '나만이 역사를 앞서간다'는 과신, 믿는 바의 실현을 위해서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다'는 곡변(曲辯)은 천박하다 못해 섬뜩하기까지 하다. 물론 모든 것이 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고도의 방책이라면 더 할 말은 없다.

(서울대 교수·미술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