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오후 7시30분 서울 국립국악원 예악당. 제주도립예술단이 서울에서 처음 선보이는 공연 '돌의 무늬'를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관객은 예악당을 가득 메우고도 좌석이 모자라 서 있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이날 관객들은 주로 서울에 사는 제주 출신과 제주 춤에 관심이 있는 서울 시민들이었다.
이번 서울 공연은 지난 5월 제주에서의 정기 공연을 보강, 제주 춤의 고유함과 독특함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평가 받기 위해 마련됐다. 김기원 예술감독은 "제주의 춤이 한국 춤의 한 장르가 될 수 있을 정도의 가치가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기획했다"고 말했다. 서울 공연이 성공을 거두면 '세계를 향한 제주 춤' 이란 타이틀에 걸맞게 제주의 춤사위를 해외에서도 선보이겠다는 꿈이 담겨있다. 이번 공연은 제주 출신의 한국무용가 양성옥씨가 도립예술단 안무자로 취임한 뒤 만든 제주 춤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끌었다.
경쾌한 국악 소리가 울려 퍼지자 희뿌연 안개 속에서 분홍 한복을 곱게 입은 단원들이 등장했다. 첫 번째 돌의 무늬 '참꽃의 속삭임'은 제주의 봄 벌판에서 피어나는 제주의 상징 참꽃을 화려하고 우아한 동작들로 표현했다. 하늘에서 선녀가 내려온 듯 고운 자태에 관중석 여기저기서 감탄사가 터졌다.
이런 춤이 제주도에 있었을까 싶은 생각에 잠겨 있는 순간, 두 번째 돌의 무늬 '해녀춤'이 시작됐다. '해녀춤'은 '참꽃의 속삭임'과는 대조적으로 역동적이고 대담했다. 어슴푸레한 새벽빛을 뚫고 파도 소리를 들으며 해녀들이 이웃과 함께 바다로 나가는 장면을 시작해서 넓고 깊은 바다에서 물질하는 장면들이 과감하면서도 세밀하게 묘사됐다. 중간중간에 삽입된 해녀들의 '숨비소리'는 서귀포 앞바다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세 번째 돌의 무늬 '오돌또기 장고춤'은 올해 5월 제주 정기공연에서 첫선을 보인 것으로 제주민요 '너영나영' 가락에 맞춘 제주형 장고춤이다. 빙그르르 돌아가는 춤사위와 어우러지는 민속 장단에 어깨춤이 절로 났다.
돌의 무늬 '허벅놀이'는 이번 공연의 절정이었다. 다양한 크기의 허벅(동이)과 제주의 그릇들을 하나의 타악기처럼 두드리며 내는 소리들과 물 항아리에 바가지를 엎어서 내는 소리들이 신비스러운 하모니를 이뤘다.
무대 주위는 제주의 돌담으로 장식됐고, 무대 옆에는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어 공연 중간중간에 올라오는 자막이 춤에 대한 이해를 도왔다. 첫 공연은 성공적이었다. 제주가 고향인 강승화(48)씨는 "제주도를 부드러움 속에서 역동적으로 표현했다. 다음에는 가족까지 데려와야겠다"고 말했다. 이번 공연에서 제주 해녀와 물 허벅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는 안단비(14·선화예술학교1년)양은 "춤 동작 하나하나가 살아 있는 듯 섬세하고 아름다워 한국 무용을 배우는 학생으로서 배울 점이 많았다"고 말했다. 한국을 처음 방문했다가 아는 사람의 권유로 이번 공연을 관람한 영국인 크리스 그래스필드(38)씨는 "한국적이고 제주적인 춤에 매료됐다"며 "제주를 잘 모르지만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