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이자 사적 125호로 지정된 종묘(宗廟)에 관리사무소를 신축하던 중 어도(御道·왕이 다니기 위해 박석을 깔아 놓은 도로)의 박석 50여장이 부주의로 깨졌다. 문화재 관리자인 문화재청의 무신경으로 문화재가 훼손된 것이다.
조선조 역대 왕과 왕비의 신위(神位)를 모신 왕실의 사당인 종묘에 깔린 박석은 조선시대 것이다. 어도는 종묘 정문에서 종묘의 중심 건물인 정전(正殿·태조와 그의 비 등의 신주를 모신 건물로, 국보 227호)에 이르는 길로, 박석이 훼손된 구간은 100여m 정도이다.
문화재청 궁릉활용과는 4일 “공사를 맡은 협진개발이 지난 2일 공사 현장에서 대형 느티나무를 크레인으로 옮기던 도중 일이 벌어졌다”고 밝혔다. 궁궐 등에서 왕이 다니는 길의 위엄을 나타내기 위해 길 가운데를 평평하게 돋운 뒤 그 길 바닥에 놓는 박석은 종묘의 경우, 크기 70㎝ 내외, 두께 10㎝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문화재청이나 시공사측은 공사 도중 박석에 대해 아무런 보호조치를 취하지 않고도 “크레인 바퀴 폭이 2m를 넘기 때문에 나무를 옮기기 위해서는 어도를 지나지 않을 수 없었다”는 변명만 하고 있다. 3일 오후 4시쯤 종묘를 찾았던 최재훈(29·대학원생)씨는 “박석이 깨졌는데도 대형 굴착기가 계속 어도로 다니고 있어 현장 관계자들에게 항의하자 ‘새것으로 바꾸면 될 것 아니냐’고 태연스럽게 답하더라”고 전했다.
1394년 창건된 종묘는 임진왜란 때 불탄 뒤 1608년 다시 지은 것으로, 단일 목조 건축물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나 장식적이지 않고 유교의 검소함이 깃들어 있는 건축물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