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후 문학의 기수 미시마 유키오의 대표작 ‘금각사(金閣寺)’는 1950년 교토(京都)의 금각사에서 실제로 일어난 방화사건을 소재로 한 소설이다. 소설에서 주인공으로 나오는 젊은 학승(學僧)은 일본인들이 전통문화의 상징처럼 떠받드는 금각사에 불을 지른 후 수면제를 먹고 자살을 기도했으나 미수에 그친다. 죽은 것은 그의 모친이었다. 아들의 방화(放火)와 관련해 조사를 받고 돌아오는 길에 다리에서 투신자살한 것이다. 그가 경찰에서 되풀이한 말이 “여러분들께 폐를 끼쳐 죄송합니다”였다.
시인이자 수필가인 김소운(金素雲)은 일본 여행 중 도쿄 스테이션 호텔에 묵은 적이 있었다. 어느 날 도쿄 역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주소가 잘못돼 호텔로 갈 전보가 그리로 왔다는 것이었다. 바빠서 찾으러 갈 시간이 없으니 읽어줄 수 없겠느냐고 했더니 역무원은 “폐를 끼치게 돼 죄송하다”며 주저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나중에 보니 그 전보는 서울에 있는 아들의 죽음을 알리는 것이었다.(‘목근통신’)
남에게 폐(일본 말로는 ‘메이와쿠·迷惑’)를 끼치는 것은 일본인들이 사회생활에서 가장 금기시하는 것 중 하나다. 남을 언짢게 하고, 신경 쓰게 하고, 귀찮게 하는 게 모두 여기 해당한다. 유치원 때부터 아이들 교육의 제1장이 ‘남에게 폐 안 끼치는 아이 만들기’다. 어떤 사람이 눈사태로 계곡에서 조난당했다가 겨우 구출됐다. 그가 맨 처음 한 말이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가 아니라 “폐를 끼쳐 죄송합니다”였다.
이라크 내 테러조직에 납치됐던 일본인 고다(香田)씨가 끝내 살해됐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그의 가족들이 “여러분들에게 폐를 끼쳐 미안하다”고 입장을 밝혔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가족이 비명에 갔는데 이처럼 냉정할 수 있다는 게 놀랍다. 며칠 전 니가타 지진 때도 두 살배기 유타군 모자(母子)가 바위 더미에 묻혔다는 소식을 듣고 그의 할머니 반응은 “명랑하게 집을 나갔던 유타가 건강하게 집에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뿐이었다. “여러분께 폐 끼쳤다”는 말만 안 했지 같은 얘기일 것이다.
죽어도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겠다는 마음의 바닥에는 나도 남이 폐 끼치는 것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이것이 일본이란 공동체를 유지하는 인간관계의 룰이다. 자기 감정의 분출도 자유롭고 남의 생각에 대한 간섭도 자유로운 한국에선 보기 힘든 풍경이다.
(김태익·논설위원 tikim@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