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복군이 북한 무장공비들에게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말했다가 입이 찢겨 죽는 참변을 당한 사실과 조선일보 기자들의 현장 취재 사실이 법원 판결로 다시 확인됐다. 그동안 김주언·김종배씨가 ‘소설’ ‘허구’ ‘신화’ ‘조작’이라고 매도했던 내용이 전부 거짓임이 드러난 것이다. 다음은 두 가지 핵심 쟁점에 대한 법원 판단.
◆"공산당이 싫어요" 부분
재판부가 “이승복이 공비들에게 공산당이 싫다는 취지의 말을 한 것”으로 판단내린 결정적 물증(物證)은 ‘대한뉴스’에 실린 이승복의 시신 모습이다.
68년 12월 13일 제작된 대한뉴스 ‘남침 공비를 무찌른다-제3신’에는 ‘어머니 주대하, 남동생 이승수 승복 여동생 승자’ 순서로 일가족 시신 사진 3장이 등장한다. 이 사진들은 대한뉴스 인터넷 홈페이지(http://film.ktv.go.kr/tma/index.jsp?menu=4&first=99&videoID=599&clipID=3768)에 동영상과 정지 화면 형태로 공개돼 있다.
이승복의 시신 사진에는 ‘입이 찢긴’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오른쪽 입술 끝부터 귀밑까지 찢어진 상처가 보이고, 오른쪽 뺨 중간에는 크고 작은 ‘+형태’의 연속된 상처 2개가 선명하다.
이 상처는 이승복의 형 학관씨가 설명한 공비들의 살해방법과 일치한다. 학관씨는 “승복이가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말하자 공비가 승복의 입에 칼을 넣고 휘저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이학관씨가 일관되게 이승복이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말했다고 진술했고, 이웃 주민인 서옥자, 최순옥, 최순녀, 유경상씨 등도 사건 직후 이학관으로부터 그 말을 들었다고 진술했다”며 “당시 15세 나이로 중상을 입은 이학관이 거짓말한 것으로 보이지 않고 이웃 주민들도 거짓말하고 있다고 인정할 만한 자료가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와 함께 현장에 기자를 보낸 서울신문도 이승복군이 “공산당에 속지 않아요”라고 말했다고 보도한 사실도 근거로 들었다.
이웃 주민 최순옥씨는 “공산당 지가 뭐 안다고 싫다 좋다 해가지고… 이렇게 입이 째져서 덜렁 내려진 것… 저승에 가서라도 어떻게 밥을 먹느냐고 그러면서 내가 끈을 묶었다”며 넋두리하면서 이승복의 시신을 수습했다고 증언했다. 지서장 하일씨도 “틀림없이 입이 찢어진 걸 봤거든요”라고 진술했다. 두 사람의 증언은 모두 증거로 인정됐다.
◆조선일보 기자 현장취재 부문
재판부는 “당시 조선일보 기자 강인원, 노형옥은 68년 12월 10일 이 사건 현장에 가서 직접 취재한 것”이라는 판단의 근거로 조선일보가 현장에서 촬영, 보관하고 있는 원본 필름 15장을 들었다.
필름 15장은 이승복 생가 초입 시신이 놓인 장소를 가리키는 주민들 이승복 생가 원경 이승복 생가 내부 순서로 촬영돼 그 자체로 완벽한 논리구조를 가지고 있고, 5장 단위로 잘려 중간에 다른 사진을 이어 붙인 흔적이 없다. 재판부는 또한 이 필름내용이 사건 다음날인 68년 12월 10일 현장 모습을 담은 경향신문 사진 속의 등장인물과 행동, 그림자 길이, 각도 등과 유사한 만큼 조선일보 필름 역시 비슷한 시간대에 촬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피고인들은 “제3자가 찍어서 조선일보에 주었을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현장을 취재한 경향신문 기자들이 조선일보 필름 속에 찍혀 있고 다른 언론사나 국가기관에 같은 내용의 사진이 보도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조선일보 사진기자 노형옥씨가 직접 촬영한 것”이라고 인정했다. 특종이 되는 정도의 필름 원본을 통째로 다른 신문사에 빌려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점도 인정했다.
재판부는 이와 함께 현장 취재 경위와 기사 송고 과정 등에 대한 조선일보 기자들의 구체적인 진술, 조선일보의 기사 내용이 현장 상황과 일치하는 점 등을 들어 조선일보 기자들이 그 당시 현장을 취재했음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 밖에 조선일보 강인원 기자가 당시 기사를 송고한 ‘농촌진흥청 고령지농업시험장’(일명 대관령 목장)에 전화가 설치돼 있었던 점, 지서장 하일씨가 “조선일보 기자를 현장에서 만났다”고 진술한 점 등도 조선일보 기자들의 현장 취재의 근거로 인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