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행정수도특별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 이후, 충청권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다. 충남·대전·충북의 시·도지사는 물론이고, 시·도의회의원들, 시민단체, 이·동장협의회에 공무원 직장협의회 등이 잇따라 성명서를 내거나 비상시국회의를 열고 있다. 28일엔 대전에서 1만여명이 모여 항의시위도 벌인다는 계획이다.
헌재의 위헌 판결로 충청권 이외의 전국 다른 지역 주민들은 대체로 마음이 가벼워졌을 것이다. 신행정수도 건설 구상이 정치적인 목적으로 시작된 데다, 많은 국민들이 수도 이전을 반대해 왔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 헌재라는 공정한 기구가 판단을 내려줬으니, 시작 안 한 것만이야 못하지만, 다수 국민들은 잘된 일이라고 손뼉 치는 것이 이해가 된다.
그렇지만 충청권 주민들로서는 그냥 넘어가기에는 너무나 자존심이 상한 상태이다. 심대평 충남지사가 위헌 결정 이후 쏟아내는 발언은 이런 정서를 잘 말해준다. 심 지사의 첫 반응은 "반대자들은 박수를 보낼지 몰라도, 충청도민으로서는 '헌재가 결정했으니 수긍한다'고 말하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였다. 며칠 지나면서 이런저런 대안이 나왔을 때도 심 지사는 "중앙부처 몇 개를 떼어주는 식의 구시대적 대안으로 충청권 민심을 달래려 한다면 절대 용서할 수 없다"고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26일 열린 충남사회단체 간담회에서 나온 이야기들은 좀 더 충청도민들의 밑바닥 정서를 보여준다. '영·호남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면 폭동이 일어났을 것', '자식들에게 핫바지 소리를 듣게 하겠느냐', '규탄집회는 한두 번으로 끝나선 안된다'는 등의 이야기가 거침없이 쏟아졌다.
이런 반응들이 으레 일어날 수 있는 반발로 그치면 좋겠지만, 충청도민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면 이 문제를 좀더 신중하고 매우 진지하게 풀어가야 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신행정수도 이전 무산으로 충청도민들은 다시 한번 정치권에 휘둘리는 쓰라린 맛을 보고 있다. 사방에서 '그것 봐라, 안될 줄 알았다'는 식의 냉소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하다. 이번에 또 어영부영 넘어가다가는 충청권은 아예 그렇게 대해도 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뿌리박힐지 모른다는 절박함을 표출하는 것이다. 대충 넘어가려 한다면 정말 정치권이나 전체 국민들을 향해서 본떼를 보여주려는 마음이 폭발할지 모른다.
그런데 정부나 정치권이 신행정수도에 버금가는 정책적 대안을 내놓는다고 해도 국회와 청와대가 빠졌다는 상징성을 놓고 본다면, 수도 이전에 버금가는 정책이 나올 수가 없다. 아마 정부나 정치권이 이런 부분에서 난감해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해결책이 전혀 없지도 않다. 충청도민들의 실망이나 좌절감과 손상된 자존심은 정서적·심리적 측면이 강하다. 이번에야말로 정치권은 물론이고 전 국민이 충청도를 향해 "정말 미안하게 됐다, 얼마나 실망이 되겠느냐. 더 좋은 방향을 찾아보자"는 진심어린 격려와 관심을 보일 시점이다.
정치권은 어떻게 하는 것이 득표에 유리한가를 계산하기보다, 이번엔 충청권이 한국 전체 발전에 확실히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을 만들어가야 한다. 물론 그 다음 순서는 행정수도 이전에 버금가는 효과를 내는 행동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심재율 사회부차장 (중부취재팀장) jysim@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