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김영삼 대통령의 승부 기질을 빼닮았다. 김 대통령은 재임 중 역사 바로세우기를 비롯한 여러 화끈한 결정을 했다. OECD 가입도 그중 하나였다. 그 화끈함이 경제를 멍들게 한 ‘겉멋’이었음을 IMF를 당하고서야 많은 사람들은 알게 됐다.
노무현 정권은 지방 분권(分權)의 가장 화끈한 방법으로 수도를 옮기려 했다. 분권은 옳은 방향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수도 이전까지 옳은 것일 순 없다. 많은 전문가와 국민들이 그렇게 말했으나 노 대통령은 '정권을 걸고' 더 화끈하게 맞서는 승부의 길을 택했다. 정치에선 곧잘 먹혀들던 그 저돌성, 화끈함이 헌재에선 통하지 않은 데서 시대의 변화를 읽는다.
우리 정치인들은 남자와 여자를 바꾸는 것을 빼놓고는 모든 것을 다 결정할 수 있는 듯 여기는 정치만능주의에 여전히 빠져 있다. 입만 열었다 하면 민주투쟁 경력을 내세우는 이들이 수도 이전 위헌결정을 내린 헌재를 탄핵하자고 주장하는 것이 바로 그런 장면이다.
정치 승부사는 겉보기에 멋지다. 그러나 그 멋에 잘못 빠져들면 점점 더 화끈한 걸 좇는 중독(中毒) 증세를 보인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매사 왼쪽으로 가고, 그것도 좀더 화끈하게 가는 것이 진취적인 것이고 멋인 양하는 풍조가 번지고 있다. 국가보안법은 독소 조항을 걷어내면서 안보도 지키는 쪽으로 개정 논의가 오갔었다. 그런데 갑자기 대통령은 “칼집에 넣어 박물관으로…”라고 말했다. 여야 합의 개정이란 쉬운 길을 놔두고 사생결단의 큰 판을 벌인 것이다. 골수 지지자들은 “역시 노무현”이라고 열광했다. 그러자 여당 내부가 묘하게 돌아갔다. 정작 보안법으로 감옥살이를 했던 이들은 신중하자고 말하는데 감옥에 가본 일도 없는 이들이 앞장서서 더 목청을 높이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겉멋이란 바로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1592년 4월 13일, 부산 영도에 상륙한 왜군은 이틀 만에 부산을 함락했다. 이후 경상도 충청도를 거쳐 한양에 입성한 게 5월 3일, 20일 동안 사실상 부산에서 서울까지 걸어온 것이나 다름없다. 그 치욕을 당하고도 힘을 키울 생각은 하지 않고 사농공상(士農工商)의 겉멋에 빠져 있던 조선 왕조가 300년을 더 버틴 게 신기할 정도다.
이 부끄러운 유산을 그대로 물려받은 게 북한 정권이다. ‘주체’ ‘자주’의 겉멋을 부리다 깡통을 찼다. 한 전직 청와대 인사는 “이런 좌파 겉멋으로 10년쯤 더 보내다가 곧바로 북한의 진짜 좌파 깡통경제까지 떠안게 될 경우 우리 경제가 어떻게 될까를 생각하면 등에 식은땀이 난다”고 했다.
그래도 적지 않은 사람들은 "우리도 많이 컸다"며 느긋하다. 북한의 위협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남한 내 주사파들의 입을 틀어막을 필요도 없고, 미국에는 좀 큰소리쳐도 된다고 말한다.
우리가 큰 건 사실이다. 그러나 이웃 일본은 더 많이 앞서가 있고 또 다른 이웃 중국은 우리를 앞지르기 직전이다. 국민소득은 일본의 3분의 1이면서 일본보다 3배 더 큰 목소리로 '반미면 어때?'라고 나갈 정도로 크지는 못한 것이다.
북한의 위협을 과장해서도 안 되지만, 간첩과 빨치산 출신을 결과적인 민주화 운동가로 떠받들고, 좌익의 인권까지 찾아주지 못해 안달하고, 통일 이후에 해도 될 좌파 역사 복원을 굳이 앞당겨 서두를 정도로 자신할 처지인지도 모르겠다.
이 정권의 누구는 그런 역사적인 일을 안 하고 소득 3만달러로 가면 뭐하냐고 말하고, 다른 누구는 그런 걸 해야 2만달러로 갈 수 있다고 말한다. 자기들끼리도 서로 말이 부딪치고 엉긴다. 그러든 말든 이런 굿판을 벌여야 멋지다고 여긴다. 그야말로 겉멋이다.
(홍준호 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