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천

유럽을 순방 중이던 이해찬 국무총리가 지난 18일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를 격렬하게 비난한 데 이어 정동채 문화관광부 장관과 허성관 행정자치부 장관도 22일 국정감사를 받는 자리에서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이 총리와 같은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이 같은 일련의 발언들은 표현방식이 보다 과격하고 직설적이었을 뿐, 새로운 내용은 아니었다. 참여정부가 출범한 이후 노무현 대통령이 일관되게 견지해 온 두 신문에 대한 적대적인 태도가 각료들에 의해 보다 솔직히, 그리고 강하게 표출되었을 뿐이다. 그렇지만 그러한 태도가 정부와 언론 모두에게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되는 바가 크다. 마치 생존의 명운이 걸린 것과 같은 피곤한 소모적 갈등을 중단하고 정상적인 정부와 언론의 관계로 돌아가야 옳다. 이를 위해 몇 가지 의견을 말하고 싶다.

첫째, 정부는 개혁을 추진함에 있어 여론의 동향, 다시 말해 개혁정책에 대한 국민의 동의의 수준을 크게 의식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어떤 정책에 대한 국민의 동의의 수준은 그 정책의 지속과 성패를 가늠할 뿐만 아니라 언론의 보도와 논평에도 영향을 미친다. 만약 어떤 정책에 대한 국민의 동의의 수준이 매우 높은데도 불구하고 언론이 거기에 반하는 보도와 논평을 하기는 실제로 힘들다.

예컨대 국가보안법의 철폐에 대한 국민의 동의의 수준이 매우 높을 때 언론이 지속적으로 반대 입장을 강하게 고수할 수 있겠는지를 생각해 보면 된다. 다시 말해 어떤 개혁정책에 대해 언론이 비판적 태도를 보이는 것은 그에 대한 국민의 동의의 수준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정부는 추진하는 정책에 대한 언론의 비판 자체를 정부에 대한 적대적 태도로 보기 이전에 먼저 그 정책에 대한 국민의 동의의 수준이 어떠한지에 관심을 두어야 옳다.

둘째, 언론이 어떤 현안에 대한 국민의 동의 수준을 반영하기도 하지만 역으로 여론형성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그래서 정부는 언론과의 협조관계를 원한다. 그렇지만 정부와 언론이 협조관계로 발전하려면 자기의 필요성을 상대방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할 것이 아니라 상대의 존재 이유를 바르게 인식하여 서로의 필요가 제대로 충족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러지 않고 특정 언론사를 타도해야 할 대상으로 공격하는 것은 어느 모로 보나 국민의 동의 수준을 높이고자 하는 의도라기보다 고정된 지지세력의 결집만을 위한 폐쇄적 대응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실제로 유료발행부수가 370여만부에 이르는 조선·동아 두 신문을 적으로 몰아가는 것이 어떤 정책에 대한 국민의 동의의 수준을 높이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될까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셋째, 민주주의는 공권력을 행사하는 당사자들이 국민들로부터 지속적이고도 면밀한 감시를 받는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이 같은 민주주의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불가결한 장치의 하나가 언론이라는 것을 공직자들은 인정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참여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오늘의 상황에서 ‘미디어 민주주의’라는 개념이 등장했듯이 언론이 정치 과정과 정책결정 과정의 한 부분임도 정부는 수용해야 할 것이다. 반면 언론은 정당과 의회의 많은 기능을 대행하게 되었으며, 공공문제의 관리와 정책결정 과정에서 정부와 더 깊은 연계를 하게 되었다는 데 대해 정부와 함께 책임을 나누어야 한다. 그러나 그 책임은 정부에 대해 지는 것이 아니라 국민에 대해 진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이 같은 언론의 책임은 언론 본래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는 데서 가능해진다.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던 현 집권세력이 이런 기본을 모를 리가 있겠는가.

(유재천·한림대 한림과학원장·언론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