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경축식에서 국무총리의 발언 순서가 되면 사회자는 "다음은 국무총리의 말씀이 있겠습니다"라고 한다. 그만큼 나라의 중요한 자리이고, 국민들로서는 경청할 수밖에 없는 말을 하는 자리다. 그런 자리에 있는 이해찬 총리가 유럽에 가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더 이상 까불지 말라"면서 "조선·동아가 나라를 너무 흔드니까 불쾌하다"고 말했다. 이 총리는 "조선·동아는 내 손바닥 안에 있다"면서 "지가 뭔데 나라를 흔들어"라고도 했다. 여기까지만 들어도 이 총리의 발언이 과연 '말씀' 대접을 받는 국무총리의 발언인지 의심스럽다. 총리의 말이 아니라 노사모의 발언이라면 그런 사람들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 하겠지만 말이다. 이 총리의 이날 발언은 아무리 취중이라 해도 정말 브레이크 없이 막 흘러갔다.
가슴 아픈 것은 이 총리의 이런 막말이 사실은 무심결에 하는 이야기가 아닌 것같다는 인상 때문이다. 이 총리는 "내가 유심히 조선일보를 본다. 대통령은 안본다"면서 "동아가 나를 얼마나 왜곡하여 보도했나"라고 했다. 이 총리의 조선·동아를 향한 적개심은 이 총리 개인만의 것이 아니라 최고 권력자를 포함한 정권 전체의 정서라는 이야기다. 어떻게든 조선·동아를 옥죄려는 의도가 역력한 신문 관련 법안의 배경도 이로써 확연히 드러난 셈이다. 이 총리가 다른 메이저 신문에 대해서만은 '중심을 잘 잡고 있다'면서 자신들의 과녁은 그 신문이 아니라고 확인해 주었기 때문이다.
사실 권력과 신문은 불편한 관계가 정상이다. 아무리 속 넓은 권력인들 매일처럼 자신을 비판하는 신문이 예쁘게 보일 리가 없다. 그러나 신문 구실을 하려면 불편해도 이런 관계를 참아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권력을 비판해야 하는 본연의 사명을 내팽개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대로 된 나라의 제대로 생각하는 정치 지도자라면 그도 권력과 언론의 이런 관계를 어쩔 수 없는 걸로 받아들이고 참아내는 것이다.
어느 나라의 어느 신문도 국민 다수의 지지를 받는 정권을 함부로 비판하지 못한다. 그랬다가는 정권의 정치적 보복보다 먼저 독자가 그 신문을 응징하는 것이다. 지금 이 정부의 지지도는 20~30%대를 오르내리고 있다. 내놓은 정책마다 반대가 찬성을 웃돌고 있다. 신문의 정권 비판은 이런 국민의 뜻을 반영한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면 신문에 대한 증오심과 적개심을 토해내기보다는 왜 우리는 국민으로부터 외면을 받는가를 돌아봐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지금 이 나라는 그런 상식이 통하지 않는 나라다.
이 총리는 함께 정치를 하는 야당에 대해서도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역사가 퇴보한다"면서 "보수세력과 이들의 부당한 요구에 절대 도덕적으로 타협하지 않는다"고도 말했다. 대한민국의 정권과 신문, 정권과 야당은 바로 이런 관계에 있다. 이게 이 나라의 우울하고 답답한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