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시 동안구 부림동에 있는 공방에서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생칠기능 보유자 송복남씨. 송씨는 “제대로 된 그릇 하나를 완성하는 데 보통 두세달이 걸린다”며 “작품에 대한 장인(匠人)의 자부심이 옻칠 그릇의 수명을 좌우한다”고 말했다.

"요즘 출토되고 있는 가야(伽倻)시대 유물들이 천년세월에도 썩지 않고 원형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옻칠을 했기 때문입니다."

18일 오전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부림동. 자신의 아파트 방한칸에 마련한 1.5평 정도의 작고 허름한 작업장에서 옻칠 장인(匠人) 송복남(宋福男·69)씨가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송씨는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17호로 지정된 생칠(生漆) 기능보유자.

생칠이란 옻나무에서 얻은 수액(樹液)을 나무그릇 등에 칠해 광택을 내는 옻칠을 말한다. 옻칠은 이른 봄에서 가을까지 3일 간격으로 옻나무 껍질에 날카로운 칼자국을 내 모은 옻액을 모시나 명주천으로 걸러 불순물을 제거한 뒤, 여러 번 반복해서 칠하고 건조시켜 완성한다.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열세살때인 1947년 처음 서울 충무로의 옻칠 공방(工房)에 들어갔습니다. 당시엔 일본인들이 남겨놓고 간 공장들이 서울에도 많이 있었고, 웬만큼 사는 집에서는 옻칠그릇을 많이 쓰던 때였죠."

생계를 위해 시작한 옻칠에 남다른 재능을 보인 송씨는 1967년 스스로 공장을 차려 독립을 시도했다. 하지만, 저렴한 가격의 스테인레스 그릇들에 밀려 사업에 실패한 송씨는, 1981년 옻칠기능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고(故) 홍순남 선생의 작업장에 들어간다.

15년간 스승에게 전통 옻칠을 사사한 송씨는 1993년부터 안양에 내려와 자신의 공방을 만들었다. 도(道)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뒤, 안양시에서 좋은 조건의 작업장을 마련해주겠다고 제안했지만, 송씨는 여전히 햇빛도 들지않는 골방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좋은 조건에서 작업을 하는 것도 좋겠지만, 무엇보다 작품에 대한 장인(匠人)의 자부심이 있어야합니다. 제대로 만든 옻칠그릇과 그렇지 않은 그릇은 겉으로는 잘 표시가 나지 않아도, 몇년동안 계속 쓰다보면 내구성(耐久性)에서 큰 차이가 나기 마련이죠."

송씨가 그릇 하나를 완성하는데는 보통 두세달이 걸린다. 7~8번 칠을 하고 말리는 작업을 되풀이하기 때문. 그는 "제대로 만든 옻칠 그릇은 50~60년은 족히 지탱한다"며 "햇볕없는 장소에서 정성스레 건조하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57년간 이 일에만 전념해온 송씨지만, 그는 아직도 자신이 해야할 일이 남았다고 말한다. 옻문화가 남아있는 한·중·일(韓·中·日) 3국 중, 현재 기술적으로 가장 앞서 있다고 평가받는 일본을 능가하는 것이 아직 그에게 남아있는 과제다.

"우리나라에선 옻칠그릇이 제기(祭器) 정도로만 쓰이는데 반해, 일본에선 많은 가정용 식기에 옻칠그릇이 쓰입니다. 수요가 많다보니 작업장 내 먼지를 최소화하는 첨단 기술을 사용한 옻그릇들이 만들어지고 있죠."

지금은 침체돼있지만, 송씨는 자신의 대(代)에서 옻칠공예가 다시 한번 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그는 "옻은 불에 강하고 항암작용이 있어, 화학성분으로 덧칠한 그릇과는 비교할 수 없는 최고의 자연산 그릇"이라며 "요즘 젊은세대들도 건강을 많이 생각하는 추세다보니, 다시 많은 사람들이 옻그릇을 사용할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