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볕이 따사로운 주말 오후 아이와 호수의 풀밭에 가기로 했다. 바구니를 채울 과일과 음료를 사러 가까운 대형할인점에 들렀다. 나는 음식 코너로, 아이는 서적 코너로 향했다. 필요한 것을 담고 서적 코너로 가니 아이는 읽던 책을 보여 주며 용돈으로 그것을 사도 되는지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제목을 보니 요즘 드라마와 소설로 화제가 되고 있는 이순신 관련 책이었다.

아이는 이미 이순신 책을 읽었었다. 그러나 옛날 사촌형이 보던 책이라 새로 편집된 것으로 사주려던 차에 잘되었다 싶었는데 아이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이끌었다. 만화 이순신 책들이 서적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나는 선배 작가의 소설을 각색한 책을 권하며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만화를 사되 활자본도 함께 사자는 것이었다. 지출이 늘더라도 아이가 제대로 이순신을 읽길 바랐다. 아이는 무척 고마워했고 활자본 이순신을 찾아 서적 코너를 이리저리 뛰었다. 어디에도 활자본 이순신은 보이지 않았다. 분명 명작동화와 위인전기가 꽂혀 있었는데 이제는 그 자리마저 현란한 표지의 만화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심지어 만화로 읽는 교과서까지 등장해 있었다. 만화 점령군이 서적대를 싹쓸이한 것처럼 소름이 돋았다.

그날 풀밭에 가려던 나는 흔들렸다. 흔들리는 것은 괴로움, 시인은 그것을 중심의 괴로움이라고 했던가. 무엇이든 한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치면 위협이 되고 폭력이 된다. 괴로움일지라도 중심을 잃지 않는 균형 감각이 절실히 요청되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