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가장 왕성한 이론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탈식민주의(postcolonialism) 페미니즘 학자인 가야트리 스피박(Gayatri Spivak·62) 교수(미국 컬럼비아대 비교문학)가 지난 14일 ‘김옥길 기념강좌’ 참석차 방한했다. 강좌에서는 지난주 타계한 프랑스 사상가 자크 데리다의 사상이 자신에게 미친 영향을 발표했던 그가 여성학자 장필화(이화여대 대학원장)와 후기 식민주의가 언어와 일상, 페미니즘 연구에 미친 영향을 이야기했다.

장"사이버 언어가 현실언어 더럽혀" 스피박 "남을 이해하는 훈련이 중요"
장"성매매금지법, 어떻게 보나" 스피박 "性노동자들 낙인 거둬야"

외투 안에 인도 전통복장 사리를 입은 스피박 교수는 장필화 원장과의 대담에서 "훈련되지 않은 상상력이 언어를 빈곤하게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허영한기자 ypunghan@chosun.com



장필화 : 당신은 인도 태생으로 캘커타대학을 나온 뒤 미국에서 가르치고 있다. 영어는 이제 생존을 위한 글로벌 언어이고, 힘 있는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수단이 되었다. 이런 권력에 대한 욕구가 한국에서는 조기영어붐으로 나타나고 있다. 당신은 영어와 모국어를 어떤 시각에서 바라보는가?

스피박 : 언어는 천천히 가르쳐야 한다. 영어를 느리게 가르쳐라. 문제는 영어를 가르칠 것이냐 말 것이냐가 아니다. 사회적 욕망이 문제다. 그런데 이런 욕망을 밑바닥부터 바꾸려고 하는 것은 너무나 비현실적이다. 그렇지만 영어를 세계화의 유일한 도구로 삼으려는 시도에는 굴복해선 안 된다. 모국어를 가르쳐라.

장 : 당신은 상상력이란 말을 자기이해(self-interest)와 대립되는 개념으로 사용한다.

스피박 : 우리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대화를 한다. 이것이 언어의 기본이다. 우리는 상대편의 이야기를 끌어내기 위해 이야기를 한다. 이것이 언어적 훈련의 목적이다. 그러나 상대방의 반응을 이끌어내고 상대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상상력의 훈련이 필수다. 이것은 사랑이다.

장 : 같은 이야기를 사이버공간의 언어에도 적용해볼 수 있지 않을까? 사이버상에서 비속화된 언어가 현실 속의 언어를 비속화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스피박 : 사이버공간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자신을 즐기기 위해 끝없이 남을 파괴한다는 데 있다. 자신이 즐기기 위해서라면 바이러스까지 만들어내지 않는가? 훈련되지 않은 상상력이 다른 사람을 파괴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결국은 남의 입장에 설 줄 아는 상상력은 훈련시켜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언어의 비속화, 오용, 생경한 신조어 등에 대해서는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언어란 항상 그런 식으로 변하는 것이다. 그래서 전세계적으로 사용되는 글로벌언어, 사이버언어가 있다는 것 자체는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그런 글로벌, 사이버 언어로 인해 언어, 특히 모국어가 빈약해지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장 : 한국에서는 페미니즘이 서구에서 수입된 것이라는 이유로 비난을 받는 경우도 있다. 또 페미니즘은 민족주의와 충돌하는 것처럼 이야기하기도 한다.

스피박 : 아시아는 큰 대륙이고 독자적인 문제와 역사가 있다. 아시아 페미니스트들은 자신의 문제에 신경을 쓰면 된다. 그리고 아시아 페미니스트들은 '우리' 문화를 가부장제라고 비난만 해서는 안 된다. 잘못하면 이런 논의가 식민주의자들을 정당화시킬 수 있다. 식민주의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여자들에게 비우호적인 저 문화를 보아라. 우리가 해방시킨다."

장 : 데리다와 당신의 이론적인 관계에 대해 들어보고 싶다.

스피박 : 데리다의 정말 훌륭한 점은 이론을 단순히 현실에 맹목적으로 적용하려 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나는 그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고 내 작업에는 그의 울림이 많다. 1967년에 나는 그의 '그라마톨로지'를 처음 읽었다. 그가 누구인지 전혀 모를 때였다. 그 책의 첫장부터 '서구의 인종중심주의(ethnocentralism)'에 대한 비판이 나왔다. 당시는 서구중심주의가 너무 만연돼 그것을 문제로 의식하는 사람도 없었다. 알제리의 저항도 그 다음에 나왔다. 그는 프랑스 철학 전통 내부로 바로 들어가 그 철학을 비판하고 있었다. 당시 나도 인도사람으로서 영어권 전통 내부에서 같은 작업을 꿈꾸고 있을 때였기 때문에 강렬한 동료의식을 느꼈다.

장 : 현재 한국사회는 성매매금지법 시행을 둘러싸고 소란스럽다. 성매매업자는 여성들을 동원해 '우리에게 다른 대안은 없다', '우리를 두 번 죽인다'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스피박 : 이 문제는 그것이 놓여 있는 역사적, 사회적 상황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본다. 이 문제에는 아주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다는 것이다. 결국 성매매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그 여성들을 매매업자로부터 떼어놓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보다 장기적으로는 성매매에 관련되어 있는 사회적인 낙인을 변화시켜야 한다. 그들을 실질적으로 돕는 운동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성매매를 비즈니스로 간주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인도의 고유악기 중에 줄이 하나밖에 없는 현악기가 있다. 뉴욕에서 이 악기를 연주하면 왜 줄이 하나밖에 없느냐고 묻는다. 나는 "이 악기는 '상상력의 현'을 갖고 있다"고 답한다. 그 순간 사람들의 인식이 전환되는 것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