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저녁, 지인들과 함께 와인 바에서 담소를 나누는데 위층에서 시끄러운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발레와 애니메이션의 만남을 주제로 한 공연 때문에 빠른 템포의 음악에 관심을 갖고 있던 터여서, 호기심이 발동했다.

위층으로 올라가 보았더니 20대 초반 젊은이들이 음악에 맞춰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마침 힙합 파티가 열리는 날이라고 했다. 요즘 한창 성행하는 '클럽 파티'였다.

클럽 파티는 힙합 이외에 브레이크 댄스, 핼러윈, 크리스마스 등 다양한 이벤트로 연출한다고 한다. 술과 노래와 춤이 어우러지는 클럽 파티는 새벽 4~5시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필자는 별로 관심이 없지만, 무용하는 제자들 덕분에 1년에 두세 차례 클럽 문화를 접해 본다. 공연 뒤풀이를 클럽에서 하는 것이다.

'1부(공연)는 극장에서, 2부(뒤풀이)는 클럽에서!'라는 제자들의 협박(?)에 이끌려 젊은이들의 '밤문화'에 동참하는 것인데, 무대에서 보았던 몸짓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펼쳐진다. 대중연예인을 능가하는 화려하고도 도발적인 몸짓은 필자를 아찔하게 만든다.

무대 위에서는 그토록 균형과 절제의 문법을 따르면서도, 클럽이라는 밀폐된 공간에서는 엑스터시에 빠진 듯한 몽환과 광기의 세계를 보여준다.

클럽에서 몸의 극한까지 치닫는 젊은이들의 파격은 예술의 원천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 젊은이들이 마냥 부러워 보이지는 않는다. 감각적인 자극만을 추구하는 클럽 문화의 포로가 된 듯한 인상을 받곤 한다. 젊은이들이 지나치게 대중문화에 경도되어 있다.

지난 여름 서울 예술의전당에서는 세계 최고의 발레 스타들이 한꺼번에 등장한 빅 이벤트가 있었다. '세계 발레 스타 갈라(gala) 공연'. 음악으로 치면, 파바로티, 도밍고, 카레라스가 함께 공연하는 '빅 3 콘서트'와 같은 것이었다.

한 마리 백조로 환생한 루치아 라카라, 폭발적인 에너지를 분출하는 호세 카레노, 눈부신 '훼떼'(회전) 테크닉을 선보인 타마라 로조 등 세계 최고의 무용수들이 저마다 기량의 절정을 선보였다. 이 공연을 함께 본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이런 감동을 느낄 줄 모르는 삶은 얼마나 불행한가."

젊은이들이 대중문화에 과잉 노출되어 있는 반면 고급문화에 대한 체험은 거의 없다. 대중문화에 심취할 수밖에 없는 요인들은 분명히 있다.

요즘 성장 과정을 보면 유치원 때부터 놀 시간이 없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집과 학교와 학원을 벗어날 수가 없다. 중학생이 된 이후에는 오직 대학 진학이 목표다. 청소년들은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질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했다. 부모와 교사, 학원 강사가 일러주는 대로 따라가야 한다.

이렇게 자라난 젊은이들이 사회나 대학으로 진출하는 순간, 거의 무제한에 가까운 자유가 주어진다. 공부 기계로 자라난 젊은이들에게 진정한 의미의 성인식이 없는 것이다.

물론 대중문화는 새롭고 간편하고 흥미롭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경박하고 수명도 짧다. 우리에겐 우리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자부하게 하는 고급문화가 있다.

대중문화가 좌뇌(左腦)라면, 고급문화는 우뇌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좌뇌와 우뇌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가을이다. 클럽 파티도 좋지만, 공연장이나 미술관, 서점이나 박물관을 찾아가 보자. '백조의 호수'를 보며 이카루스처럼 날아오르고자 하는 인간의 열정과 의지를 느껴보자.

샤갈의 그림을 보며 시·공간을 초월하는 마술적 상상력을 체험해 보자. 젊음이, 매캐한 담배 연기 가득한 클럽이나 인터넷 속에 갇혀 있는 모습이 안타깝기만 하다.

(장선희 무용가·세종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