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서 기차로 1시간20분, 마분(馬糞) 냄새 풍기는 영국 남동부 고즈넉한 시골 마을 서섹스의 비좁은 흙길을 따라 레이먼드 브릭스(Raymond Briggs·70)의 집을 찾았다. '아이와 어른을 모두 감동시키는 작가'라는 평을 듣는 세계적 동화 작가인 그는 작업실·침실로 쓰는 이 보금자리에서 37년 간 머물며 작품 30여 권을 만들어 냈다.

"내 작품 '산타 할아버지의 휴가'는 30여년간 우유 배달 일을 한 아버지를 주인공으로 묘사한 거라오. 산타클로스와 우유 배달원은 아무리 날씨가 춥더라도 남들 꺼리는 고독한 일에 묵묵히 헌신한다는 공통점이 있지요."

그는 아내와 사별한 이듬해인 1975년, 슬픔을 잊으려 라스베이거스(미국)·프랑스·스코틀랜드를 여행하면서 얻은 영감으로 그 작품을 쓰고 그렸다고 했다. 브릭스가 그린 산타는 추운 날씨, 도둑 고양이, 굴뚝 검댕이를 싫어하는 '보통 인간'이고, '선물을 나눠 주는 사람'이란 정체를 들키면 반드시 짐을 꾸려 떠나는 현실적 인물이다.

"작품에서 현실과 공상의 세계를 넘나들고 모든 작품을 '판타지'에서 착안해 시작하지만, 상식과 논리의 틀을 벗어나면 안 된다는 것을 하나의 원칙으로 삼고 있지요. 진정 관심을 쏟는 것은 '실제 삶이란 어떤 것인가'예요." 브릭스는 '바람이 불 때'에서 '핵 폭발의 위험성'을 경고했고, 최근 국내 번역된 '괴물딱지 곰팡씨'에서는 '불화를 잠재우는 편견없는 사랑의 힘'을 전한다.

그의 모친은 20여년간 가정부로 일했다. 사회적 낙오자·약자에 대한 그의 넉넉한 시선은 그런 개인사에서 비롯됐다는 평을 듣는다.

그의 집 2층 작업실은 각종 동물 화보와 메모·낙서가 뒤섞여 발디딜 틈만 겨우 있었다. 브릭스는 "내가 죽으면 이 자료들을 누가 어떻게 찾겠나"고 혼잣말을 하더니, "내 팔자엔 주말도 없다"고 했다. "밥 먹고 자거나 이렇게 인터뷰에 뺏기는 시간 외에는 종일 스토리 구상하고 그림만 그리며 살고 있소."

브릭스는 현재 교제 중인 여자 친구의 손자가 네살 때 한 혼잣말을 듣고 작품 '물덩이 아저씨'란 책을 만들어 냈지만, 작품을 만들 때 '직감'에 주로 의존한다고 했다.

"동화책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반드시 아이를 만나야 하는 건 아니에요. '어떻게 하길래 동심(童心)을 잃지 않느냐'는 물음을 받곤 하지만 '나도 모릅니다'라고 답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