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기업인 미국 GE(제너럴 일렉트릭) 제프리 이멜트 회장이 1일 방한, 무박(無泊) 11시간의 일정을 마치고 그날로 돌아갔다. 이멜트 회장은 이날 오전 10시 수행원 없이 자신의 전용 제트기를 타고 와 12시 점심식사를 겸한 원탁회의를 시작으로 무려 7개의 공식 모임에 참석했다. 그가 만난 사람들은 한국의 국무총리와 경제부총리, 장관, 그룹 총수, 대학 총장 등 수십명에 달한다. 서울과 인천공항을 오간 시간을 제외하면 실제 서울에 머문 시간은 8시간 정도에 불과했다. 한 시간에 하나의 일정을 소화할 정도로 분(分) 단위까지 계산한 일정이었다.
▶이멜트 회장의 빡빡한 일정은 러시아 곤충 분류학자인 알렉산드르 A 류비셰프(1890~1972)를 떠올리게 한다. 생전에 70여권의 저서를 내서 20세기 러시아 과학사를 이끈 인물로 평가되는 그는 26세 때부터 죽을 때까지 56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썼는데, 그것은 매일매일 시간을 어떻게 썼느냐를 기록한 회계장부라 할 만하다.
▶가령 1964년 4월 7일의 일기는 이렇다. “알 수 없는 곤충 그림을 두 점 그림(3시간15분), 어떤 곤충인지 조사함(20분), 슬라바에게 편지(2시간45분), 식물보호단체 회의(2시간25분), 프라우다지(紙) 읽음(10분), 톨스토이 ‘세바스토폴 이야기’ 독서(1시간25분)…." 그는 이렇게 지독하게 시간을 관리함으로써 시간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 황소자리刊)
▶서양의 근대사는 시간과의 싸움의 역사였다. ‘시간은 돈이다’란 말이 바로 영국 속담인 데서 알 수 있듯이 자본주의는 시간을 절약하고 속도를 내는 사람에게 승리를 가져다 주었다. 이윤 창출을 목표로 하는 기업인들이 특히 시간 관리에 철저한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세계 최고의 부자 중 한 사람인 빌 게이츠도 몇 년 전 서울에 왔을 때 점심시간에 샌드위치를 먹어가며 한국 관계자들과 회의를 했다.
▶최근 들어 속도와 경쟁만 강조하는 이 같은 시간 관념에 대해 전 세계적으로 반성이 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빈둥거릴 것, 기다릴 것 등 ‘느리게 살기’의 지혜를 전하는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다. 그러나 “내가 바쁘지 않으면 종업원들이 일자리를 잃게 된다”는 이멜트 회장의 말은 바쁨이나 느림의 차이를 떠나, 시간을 관리하고 내용 있게 보낸다는 것이 여전히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가를 느끼게 한다.
(김태익 논설위원 tikim@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