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중등 교육 현장에서는 강제적으로 책을 읽게 하기가 말처럼 쉽지 않다. 예전에 독서지도를 열심히 하기로 소문난 학교가 있었다. 매번 특정한 도서, 즉 좋은 책을 전교생이 모두 읽고 독후감을 내고 그 결과를 성적에 반영하기도 했다. 직접 관계하는 선생님들만 10명 이상이었다. 그야말로 학교 전체가 똘똘 뭉쳐 독서 교육에 힘썼던 것이다. 언론에도 대서특필되었고 모범 사례로 손꼽히기도 했다.

하지만 정말 독서 교육 효과가 높았을까? 우연한 기회에 학생들을 접하여 솔직한 반응을 들어보았더니 대답은 그리 밝지 못했다. 그중 한 학생의 답이 걸작이었다. “전체 학생들 가운데 1/3은 확실히 도움이 되고요, 1/3은 독후감도 베끼고 책도 대강 읽고 그냥 예전과 다름없고요, 마지막 1/3은 책읽기를 더 싫어하고 글쓰기라면 이를 갑니다. 하하하.”

그렇다. 독서 지도 역시 모든 교육력이 집중 투자되어도 강제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면 그것은 ‘1/3 법칙’에 따르게 될 뿐이다. 강제로라도 책을 읽어야 한다, 생각하고 그렇게 강력하게 실천했다면 그 성과를 오롯하게 볼 수 있는 범위는 대략 전체의 1/3 정도인 셈이다.

더구나 학교 교육은 나머지 2/3를 들러리로 만들어 놓을 수도 없다. 앞서의 학교도 요즘은 예전과 같이 하지 못하고 있다. 모두 지칠 대로 지쳐서 책읽기의 즐거움도, 독서 교육의 보람도 사라지게 된 것이다. 전체적으로 보아서 별로 바람직한 변화라고 실감할 수가 없었으니까.

외국 속담에 있듯이, 말을 물가에까지 데려갈 수는 있어도 물을 마시게 할 수는 없다. 책읽기도 억지로 강요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억지로 책을 읽는 아이가 추리하고 상상할까? 논리적으로 비판할까? 마음먹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있을까?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정해진 자리와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분량을 읽으며 정해진 반응을 보여야 한다면 ‘멋진 신세계’(올더스 헉슬리)와 ‘1984’(조지 오웰), ‘수레바퀴 아래서’(헤르만 헤세)의 공간일 뿐이다.

내가 지금 초·중·고등학생이라면? 당연히 강제적인 독서 교육은 받지 않으련다. 책을 고르는 즐거움을 뺏고, 책을 읽는 기쁨도 뺏고, 책을 넘어서는 자유로움까지 뺏고, 책을 쓰고 싶다는 마음마저 뺏긴다면 내가 왜 책을 읽어야 할까?

▶덧말:중고등학교 현장에서 아이들이 즐겁고 알차게 책을 읽을 수 있도록, 그래서 자유롭고 풍요로운 영혼으로 당당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애쓰시는 모든 선생님들께 존경의 마음을 보냅니다. 읽는다는 것은 자유로워진다는 것, 그래서 자신과 또 다른 자신인 우리를 소중하게 보듬고 지켜나가는 것입니다.

(책으로 따뜻한 세상 만드는 교사들 대표·숭문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