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의 보조 수단으로 시작된 사진은 160여년의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현대인의 필수품이 됐다. 특히 디지털 카메라와 카메라폰이 등장한 뒤 ‘디카족’이란 말이 생겨날 정도로 카메라는 우리 삶 곳곳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이처럼 고해상도를 가진 ‘디카’가 쏟아져 나오는 시대에 흑백사진을 고집하는 이들이 있다. ‘송동효 흑백사진연구소’ 회원 20여명은 94년부터 꾸준히 제주의 아름다움과 그 속에 숨어 있는 4·3의 아픔 등 제주의 모습을 흑백사진에 담아오고 있다. IMF 때를 제외하고는 매년 전시회를 열고 있으며 ‘초보자를 위한 무료 사진 강좌’를 열어 사진을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촬영기법도 가르쳐 준다. 9회 동안 진행된 이 강좌를 거쳐간 사람은 50여명. 홈페이지(www.jejuphoto.net)를 통해 10회 수강생을 기다리고 있다.

‘송동효 흑백사진연구소’ 소장 송동효(41)씨. 그림을 좋아했던 그는 카메라가 귀하던 시절 집에서 장만한 카메라를 들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사진에 ‘입문’했다. 대학에서 통신공학을 전공하면서도 손에서 카메라를 놓지 않았고, 제주 곳곳을 누비다 좁다고 느낀 그는 새로운 것을 찾아 일본으로 건너가 2년쯤 머물며 작품에 몰두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날 ‘내가 왜 고향을 놔두고 이곳에 와 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고, 태어나고 자란 탓에 너무 가까운, 그래서 잘 보이지 않는 제주의 숨겨진 모습을 찾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 과정에서 사진가로서 선배이자 스승인 김영수(59)씨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송씨는 제주에는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체계적으로 사진을 배울 곳이 없는 점을 안타까워하다 ‘초보자를 위한 무료 사진 강좌’를 개설했다. 강좌의 수강생인 대학생 양동규(27)씨는 “일일이 수작업을 해야 하는 흑백사진을 배우니까 사진 공부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디카’가 대중화되면서 누구나 쉽게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됐지만, 흑백사진을 배우러 이곳을 찾는 이유는 디카로 표현할 수 없는 부분을 채우고 싶기 때문이라고 한다. 디카로는 빛의 양을 조절하는 데 한계가 있지만, 아날로그 카메라는 찍는 사람의 능력에 좌우되는 부분이 크다. 그래서 디지털은 컴퓨터로 고치고 마무리하는 후(後)작업을 중시한다면, 아날로그는 처음부터 손이 많이 가는 선(先) 작업의 비중이 크다. 송씨는 “디지털의 기술과 아날로그의 정신이 합쳐지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는 “카메라를 들고 있으면 내 눈이 달라지고, 더 자세히 보려고 한다”며 “카메라는 세상을 공부하는 도구”라고 말했다.

송씨와 회원들은 그 동안 인화지에 소중히 담은 작품들을 모아 ‘바람섬에 내리는 빛’이란 이름의 전시회를 연다.

오는 9일부터 11월 5일까지 작업실·전시장 겸 연구소인 제주시 용담동의 ‘바람섬’, 11월 15일부터 31일까지는 남제주군여성문화회관 전시실, 12월 1일부터 31일까지는 서귀포 이중섭미술관 옆 미루나무 카페에서 선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