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3월, 20여년의 직장생활을 접고 우리 다섯 식구는 캐나다 이민길에 올랐다. 당시 우리 가족은 새로운 세계로의 도전이라는 막연한 설레임을 가졌다. 그러나 결코 만만치 않은 이민생활에 염증을 느껴 3년 반만에 이민생활을 과감히 접었다. IMF가 한창이던 1999년 6월, 이민을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천국행 티켓과도 같다는 영주권을 캐나다 대사관에 반납하고, 대한민국 토종 국민임을 증명하는 주민등록증을 온 가족이 받았다. 우리는 이 땅에서 친구와 이웃하며 무엇보다도 말과 생김새가 같은 사람끼리 사는 조국 대한민국에서 적당히 부대끼며 살기로 했다.

이제 역이민 6년째. 83세 되신 홀어머니와 6개월 전 지독한 암투병을 이겨낸 집사람, 금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청년실업 50만 시대라는 지금, 외국항공사 승무원으로 당당히 취업한 딸, 대학 2년을 마치고 대한민국 국군이 되어 전방에서 전투병으로 근무하는 아들, 자그마한 제조업체에서 6년째 열심히 남은 인생을 엮어가는 50대 초반의 나. 우리집 식구들은 이렇게 산다.

그런데 적당히 부대끼며 살겠다고 돌아온 이 나라가 요즘 ‘진보’, ‘좌익’, ‘중도’, ‘보수’, ‘수구보수’ ‘친일’…, 일상생활에선 생소했던 용어들이 난무하면서 적당히를 넘어서 죽기살기 싸움판이 돼 가고 있다. 함께 살면서도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이상한 나라가 돼 가고 있는 게 아닌지 안타까운 요즘이다.

(현상윤·회사원·서울 성동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