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실이 지난해 11월 용산기지 이전협상을 맡았던 우리측 협상팀이 ‘노무현 대통령이나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인사들은 반미(反美)주의자들이므로 이 문제에 개입은 최소화시킨다’는 전제(前提)를 정했다는 내용의 ‘용산기지 이전협상 평가결과 보고’가 공개돼 과연 이것이 사실인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 보고서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만든 것이며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이 공개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한 외교관은 “당시 용산기지 협상팀은 ▲노무현 대통령과 NSC인사들은 반미주의자여서 개입을 최소화시킨다 ▲미국이 원하는 대로 돈이 얼마나 들듣지 추진해야 한다 ▲용산기지 이전을 신속히 그리고 조용히 추진하기 위해서는 모든 문제를 정치적으로 풀어야 하며 법률가적인 지엽주의는 경계해야 한다는 등 6가지의 전제를 기초로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당시 협상팀은 모두 이를 부인하고 있다. 한 협상팀 관계자는 “상식에 맞지 않는다.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서 협상하는 입장에서 어떻게 대통령의 개입을 최소화시킨다는 전제를 마련할 수 있는가”라며 “전체적으로 보고서 내용이 편향됐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특히 인용된 외교관은 주한미국대사관 이전 문제를 담당하고 있고 당시 용산기지 이전협상에 관여하지 않아 내용을 잘 알 수도 없는 입장이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당시 협상팀의 다른 관계자도 “지난해 말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협상팀이 대미 굴종적이고 문제가 있다고 해서 조사를 나와 국방부, 외교부, NSC 모두 조사한 적이 있으나, 노 대통령이 반미주의자이므로 배제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했다는 사실은 진실과 부합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을 낸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라고 말했다.
당시 협상팀이 아닌 다른 외교부 관계자는 “보고서에 포함된 외교관의 진술은 어쩌면 협상의 전제라기 보다는 협상팀 사이에서 개인적으로 오갔던 얘기들의 일부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외교부 관계자들은 최근 이런 보고서가 용산기지 이전협상이 완료된 후 관련 문서들이 대통령의 서명을 거쳐 국회로 넘겨지려는 상황에서 나온 것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한편 노회찬 의원은 이 보고서를 전제로 관련 공무원들을 국정감사의 증인으로 신청했다. 이들이 증인으로 확정될 경우 이 문제의 진상이 국회에서 밝혀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노회찬 의원이 공개한 이 문건은 A4용지 총 18쪽분량이다. 지난해 11월 11·14일 두 차례에 걸쳐 이석태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현 민변 회장) 주재로 NSC 서주석 실장, 외교부 위성락 북미국장, 국방부 차영구 정책실장 등이 참석한 회의와 청와대가 입수한 자료를 토대로 작성됐다.
핵심 내용은 90년에 체결된 용산기지 이전에 관한 합의각서(MOA)와 양해각서(MOU)에 문제가 있어 국내법적으로 효력이 없다고 판단하고 협상팀에 대해 극도의 불신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는 이 문서에서 “우리가 이전비용을 전담할 필요가 없는데도, 협상팀은 이에 대한 검토 및 문제제기가 전혀 없었다”고 했다. 문서는 “미국측은 내부적으로 90년 MOA·MOU가 미국측이 근래에 체결한 가장 유리한 기지이전 관련 국제조약으로 간주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청와대는 또 외교부 북미국에 대해서는 “미국에 대한 맹종적 자세와 현상유지적 속성으로 다른 부서의 정당한 조언을 무시해 협상실패의 중요 원인을 제공했다”고, 국방부 정책실에 대해선 “특유의 추종자세와 좁은 시야를 벗어나지 못해 협상에 뚜렷한 한계를 드러냈다”고 각각 평가했다. 실제 협상팀의 위성락 국장과 조현동 북미3과장은 올해 초 바뀌었고, 차영구 실장은 전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