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태진 논설위원

히틀러가 집권한 뒤 맨 처음 서명한 법안은 동물보호에 관한 것이었다. 1936년 히틀러 정부는 ‘게, 가재 같은 갑각류는 끓는 물에 넣어 단숨에 죽여야 한다. 그리고 반드시 한 마리씩 죽여야 한다’는 법령을 공포했다.

그것이 가장 자비롭게 죽이는 방법이라고 했다. 유머도 구사할 줄 모르고 자기 감정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히틀러였지만 집권 초기엔 그렇게 온화한 모습을 보이려는 노력도 했다.

참여정부가 출범한 지 1년 반을 넘어섰다. 집권 초반이 지난 셈이다. 그동안 우리 지도자에게서 가장 두드러진 이미지는 화내는 대통령, 고집스런 대통령이었다.

TV 토론, 국정연설, 기자회견들에서 흥분하거나 거꾸로 차갑게 얼굴이 굳은 대통령의 모습이 엎질러진 물처럼 국민의 눈과 귀로 쏟아지곤 했다.

집권 벽두, 지켜보기도 아슬아슬했던 평검사들과의 대화가 그 시작이었다. 국회에서 국민에게 나라의 정책방향을 설명하는 첫 국정연설에서는 KBS 사장에 대한 인사 개입을 10분 동안이나 해명했다.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선 측근 의혹에 관한 언론보도가 지나치다며 벌컥 화를 냈다. 어느날 느닷없이 재신임을 묻겠다고 해서 국민을 깜짝 놀라게 하더니, 탄핵안이 가결되기 전날 생중계된 기자회견에선 형에게 인사 청탁을 한 대기업 사장을 비난해 그가 목숨을 끊는 일까지 벌어졌다.

최근 일로는 지난달 광복절 경축사를 하는 대통령의 표정이 너무 싸늘해서 충격을 받았다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우리 사회는 어느덧 강파르고 핏대 세우고 막말 하는 세상이 돼버렸다.

베트남 승려 틱낫한은 우리가 보고 듣고 먹는 것에도 ‘화(火)’가 들어있다고 본다. 상대방 말이 품고 있는 화가 듣는 사람에게 고스란히 옮아오고, 화를 옮겨 받은 사람도 그 화를 드러내게 된다고 했다.

대통령은 감싸안고 어루만지고 격려하기보다 탓하고 망신주고 상처를 헤집는 모습을 더 많이 보였다. 그런 대통령을 보아 오면서 놀랍고 황당하고 무섭고 불안해지더라는 사람이 많았다.

슬며시 부아가 났다는 이들도 있다. 틱낫한 식으로 해석하면 대통령의 화가 국민에게 옮겨간 셈이다.

지난해 대통령이 어느 기자회견을 가진 뒤에 “속이 다 후련하다”고 말했다는 청와대 비서실장 얘기도 있었다. 그러나 틱낫한은 “화를 낼 때마다 그 사람 안에 있는 화의 씨가 더욱 커간다”고 했다.

이 땅에서 국민이 대통령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대통령의 몸짓과 언행에서 감동을 받는 일은 별로 없었다. 우리도 국민이 흠모하고 사모하는 멋진 대통령을 갖고 싶다는 소망을 시인 임보(林步)는 몇 년 전 ‘우리들의 대통령’에 담았다.

‘…맑은 명주 두루마기를 받쳐입고 낭랑히 연두교서를 읽기도 하고, 고운 마고자 차림으로 외국의 국빈들을 환하게 맞기도 하는/ 더러는 호텔이나 별장에 들었다가도 아무도 몰래 어느 소년 가장의 작은 골방을 찾아 하룻밤 묵어가기도 하는…발명으로 세상을 밝히는 사람들, 좋은 상품으로 나라를 기름지게 하는 사람들의 모임에 나가서는 육자배기 한 가락쯤 신명나게 뽑아대기도 하는…당신이 수제비를 좋아하자, 농부들이 다투어 밀을 재배하는 바람에 글쎄, 이 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질 좋은 밀 생산국이 되기도 하는/ 어떠한 중대 담화나 긴급 유시가 없어도 지혜로워진 백성들이 정직과 근면으로 당신을 따르는…그러한 우리들의 대통령/ 당신은 지금 어디쯤 오고 있는가?’

(오태진 논설위원 tjoh@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