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법의 한 재판부는 20일 최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한 대학생이 낸 1년간의 해외연수 신청을 허가했다. ‘국가보안법 개폐 논의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재판부는 이적단체인 ‘아주대 자주대오’에 가입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된 이 학생에 대해 ‘재판이 진행되면 돌아오겠다’는 서약서도 받았다.

이 재판부는 지난 16일에는 국보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에게 “현행 국가보안법으로 재판을 받을 건가요, 아니면 재판을 연기할까요”라고 묻기도 했다. 피고인은 어리둥절한 듯 “특별히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답했고, 재판부는 “그렇다면 잘 생각해보라”며 재판을 다음달로 연기했다.

지난 5일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국보법 폐지 발언 이후 현행 국보법을 근거로 유죄 선고를 내리는 재판부가 있는가 하면 재판을 연기하는 재판부가 나오는 등 법원이 우왕좌왕하는 모습이다. 최고 사법기관인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이 ‘국보법은 합헌’이라는 법적 판단과 존치(存置) 필요성을 밝혔으나 그보다 정치권의 움직임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14일 정재욱 전 한총련 의장에 대해 유죄가 선고됐을 때 정씨측 변호인이 국보법 개폐 논란을 이유로 선고 연기를 요청하자 재판부는 한동안 ‘법이 개정되지 않은 지금으로서는 이 법대로 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하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또 6일 국보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이종린 범민련 남측본부 명예의장의 재판 거부에도 재판부는 제재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수도권 법원의 한 판사는 “정치권의 논란까지 고려해가며 재판 일정을 조정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한 반면, 서울고법의 한 판사는 “국보법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피고인의 이익을 위해 신중히 진행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