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을 뜻하는 영어 단어에 ‘브라이브(bribe)’와 ‘해트(hat)’가 있다. ‘bribe’가 뇌물 액수의 크고 작음에 관계없이 사용되는 말이라면, ‘머리에 쓰는 모자’가 원뜻인 ‘hat’는 소액의 뇌물을 가리키는 말이다. 옛날 영국에서 장사꾼들이 공무원들에게 ‘길을 가다가 모자나 사서 쓰시오’라며 푼돈을 손에 쥐여주는 관습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표준말은 아니지만 거액의 뇌물과 소액의 뇌물을 가리키는 은어(隱語)가 있다. 바로 ‘사과상자’와 ‘떡값’이 그런 말이다.

▶엊그제 독직 사건에 휘말린 집권당 국회의원과 농림부 차관의 이야기가 신문에 크게 실렸다. 이 국회의원은 3년 전 한 기업인에게서 1억원을, 농림부 차관은 고교 선배로부터 100만원을 받은 사실이 적발됐다. 한 사람은 ‘사과상자’를 받은 셈이고, 한 사람은 ‘떡값’을 받은 것이다. 사과상자를 받든, 떡값을 받든 모두 뇌물인 이상 처벌을 해야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떡값을 받은 농림부 차관은 사표를 냈으나, 사과상자를 받은 국회의원은 정치자금이라고 버티고 있다.

▶차관은 직업공무원들이 올라갈 수 있는 가장 높은 사다리다. 30년 넘게 쌓아온 이력이 100만원에 불명예 퇴직으로 결말이 난 것이다. 91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수서 사건’에서도 건설부 국장이 한보건설로부터 100만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검찰에 구속됐다. 그때 관가(官街)에선 가장 적은 떡값으로 구속된 고위공무원이라 하여 동정론도 일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보는 국민들 눈길은 차갑다. 시대가 바뀐 것이다.

▶미국의 경우 직무와 관련이 없더라도 공무원이 25달러 이상의 선물을 받는 것을 금하고, 식사 한 끼 대접도 까다롭게 규제한다. ‘골프 접대를 받지 말 것, 전별금을 받지 말 것, 고액 축·조의금을 받지 말 것.’ 수년 전 정부가 발표한 ‘공직자 10대 준수사항’의 내용이다. 공직사회의 윤리의식을 높이려면 이런 원론적인 도덕강좌가 아닌, 구체적인 실천강령을 마련해야 한다.

▶돈 받은 국회의원의 방패는 정치자금이란 변명이다. 불법이지만, 정치자금법의 시효(時效)가 짧아 빠져나갈 구멍이 있다고 판단한 듯하다. “청탁 없이 받은 돈이었다”는 말과 함께 여론조사 비용으로 썼다는 용도까지 밝혔다. 그러나 우리당의 원조(元祖)격인 민주당 대변인이 ‘처음 듣는 이야기’라며 그 변명에 구멍을 뚫어버렸다. 농림부 차관이 받은 돈은 집권당 의원이 받은 돈의 100분의 1에 불과하다. 그런 두 사람의 운명을 거꾸로 바꿔놓은 것이 ‘정치자금법’의 마술이라면, 그 법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

(송양민 논설위원 ymsong@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