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 다니면서 주먹질을 해대는 ‘질럿’, 하이에나처럼 떼로 몰려다니면서 상대방을 위협하는 ‘저글링’, 스팀팩(Stim Pack) 하나에 의지해서 적진을 향해 돌진하는 ‘마린’….
이들은 모두 ‘스타크래프트’라는 무림에서 활약한다.
이 무림에서 살아남아 자웅을 겨룰 수 있는 것은 오직 강호들뿐. 그러나 강자들에게도 엄연히
천적은 존재한다.
그동안 꼽혀온 스타크래프트의 대표적인 천적관계라면 이윤열(팬택앤큐리텔)과 서지훈(GO)을 들 수 있다. 이윤열은 서지훈을 상대로 10승3패의 전적을 자랑한다. 아무리 ‘천하의 이윤열’이지만 특급 테란유저로 꼽히는 서지훈은 이상하게도 이윤열 앞에서는 약한 모습을 보여 왔다. 특히 열 번째 대결까지는 이윤열과 붙어서 열 번 내리 승리를 내줬다.
결국 와신상담한 끝에 열한 번째 대결에서 마침내 이윤열에게 항복의 gg를 받아낼 수 있었다. “이윤열 선수만 만나면 실력이 발휘되지 않았어요. 하지만 이윤열이 내 천적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침착하게 내 방식대로 경기를 풀어 나갔죠.” 열한 번째 대결에서 이윤열을 이긴 서지훈의 소감이다. 이때부터 서지훈은 이윤열에게 3연승을 거두고 있다.
게임 전략 스타일의 차이와 연패로 인한 심리적 위축으로 거미줄 같은 천적관계 형성
이 둘만이 아니다. 게이머간의 천적관계는 마치 거미줄같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 가운데 가장 많은 천적관계의 상대를 가진 선수는 역시 ‘테란의 황제’ 임요환(SK텔레콤 T1)과 ‘천재테란’ 이윤열. PGR21.COM(www.pgr21.com)의 전적 분석에 따르면 각종 게임대회 예선, 본선, WCG, 특별전 등을 합쳐 임요환은 프로게이머 장진남(15승4패), 기욤(10승 2패), 김환중(5승1패), 베르트랑(8승2패) 등에게 압도적인 우위를 기록하고 있다. 한편 이윤열은 프로게이머 변길섭(13승2패), 박경락(10승3패), 서지훈(10승3패), 최인규(11승1패) 등에게 공포의 대상이다. 그렇지만 임요환이나 이윤열에게도 만나기 부담스러운 적수들은 있게 마련. 임요환은 ‘몽상가’ 강민(KTF)에게는 1승7패로 힘을 못쓰고 있고, 이윤열도 ‘치터테란’ 최연성(SK텔레콤 T1)에게는 4승7패로 열세에 있다.
이런 천적관계는 왜 나타날까? 프로게임 전문가들은 게임 스타일의 차이를 그 이유로 꼽는다. 게임 스타일이란 전략이나 운영, 컨트롤적인 면을 의미하는데 이런 게임 스타일이 특정한 선수에게만 잘 통하지 않을 때 천적관계가 형성된다는 것. 또한 심리적인 면을 지적하는 게이머도 있다. 한 선수에게 자꾸 지면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준비한 전략도 과감하게 실행하지 못하며 컨트롤에도 실수가 생기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떠한 게이머라도 약점은 있고, 경기 할 때의 컨디션과 운이 변수로 작용한다. 때문에 이러한 천적관계를 경기의 승패로 직결시키기 어렵다는 중론이다. 많은 선수들의 천적으로 군림하는 이윤열 역시 “천적관계의 상대를 만나면 신경은 쓰이지만 너무 의식하지 않으려고 한다”면서 “천적은 넘어설 수 없는 장애물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어쨌든 팬들은 만났다 하면 한쪽이 깨지는 일방적인 천적관계보다는 물고 물리는 호적수 관계에 더 열광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