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터는 영화를 보기 전에 관객과 만나는 첫 번째 얼굴이다. 나도 89년부터 10년 동안 영화 포스터 디자인을 800여편 했었지만 예나 지금이나 영화계는 “영화가 잘 되면 영화 덕이고 안되면 포스터 탓”으로 돌릴 정도로 포스터에 대한 심리적인 의존도가 높다. 예전처럼 포스터에 ‘선글라스를 낀 주인공을 넣으면 앞이 깜깜해진다’ ‘제목을 붉은색으로 해야 훨훨 타오른다’는 등의 미신과 싸우는 일은 이제 거의 없지만 수준 높은 취향의 관객을 상대로 얼굴을 만들어내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여배우들 뺨치는 얼짱에다 실력도 출중한 포스터전문회사 ‘꽃피는 봄이오면’의 김혜진 실장과 ‘디자인 바름’의 우미영 실장을 만났다.
“솔직히 영화보다 포스터 낫다는 소리 들으면 좋죠?”
김혜진=네…. 적어도 흥행에 실패했을 때 그래도 포스터는 좋았다는 소리는 사실 듣고 싶어요.
우미영=맞아요…. 모두가 동의해 나온 인쇄물인데 결과가 안 좋다고 포스터, 광고가 부실했다는 얘길 들으면 너무 속상해서, 적어도 ‘탓’만 안 들었으면 싶을 때가 있죠.
“포스터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시작은 뭐였고 기억나는 일은?”
김=‘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공짜로 해달라고 했어요. 돈 벌면 준다고. “절대 간섭하지 말라”는 조건으로 다른 영화 하다 남긴 특수효과용 피와 자투리 필름으로 정열 하나로 뭉쳐 포스터를 만들었죠. 타성의 벽을 깬 작품이라 애착이 많이 가요.
우=‘8월의 크리스마스’가 첫 작품인데 식자체까지 지정해주며 하라는 대로 손만 빌려줬어요. 자존심도 상하고 상처도 받았죠. 만들 때는 일종의 ‘집단 촌스러움’ 같은데 결과가 나오면 ‘대단한 파괴력’을 발휘하는 게 영화광고의 특징인 것 같아요.
“영화광고 디자이너의 애환을 공개 하소연하라면?”
김=극장용 배너(banner) 광고만 해도 사이즈 조금씩 다른 걸로 100가지를 만드는 경우도 있어요. 스탠드에 팝콘봉투, 콜라용 종이컵까지 만들었는데 일주일 만에 간판 내릴 때는 서운해요. 내가 만든 전단이나 엽서 같은 거 바닥에 누워 밟히고 있으면 가슴 아프고.
우=새벽 1시까지 일하고 퇴근했는데 한 감독님이 편집실에서 포스터 시안 교정지를 컬러 프린트로 당장 봐야 한다고 연락이 왔어요. 바로 튀어나가 프린트해서 편집실에 가져다 주고 새벽 3시쯤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정말 서러웠어요.
김혜진씨는 ‘파이란’을 하면서 영화 속에 없는 ‘두 사람의 상상 속 만남’을 포스터로 잡아냈고 우미영씨는 ‘가문의 영광’을 하면서 다섯 명의 배우를 한꺼번에 보여줘야 하는 어려움을 잘 정리해 포스터를 뽑아냈다. “좌절은 있지만 포기는 절대 없다.”(김) “회의, 미팅, 스태프와의 조율이 힘들었지만 그 어색함을 이겨내고 일을 하는 제가 조금 대견스럽다.”(우) 영화가 좋고 자신의 직업을 사랑하는 두 여자. 흔한 전단 한장이라도 보고 나서 휙 집어던지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글·사진=정승혜 씨네월드이사·영화칼럼니스트 amsajah@hanmail.net )
우미영은
1971년 부산생. 1998년부터 디자인사 ‘링크’ ‘애드립’을 거쳐 2003년 ‘디자인 바름’ 설립. ‘8월의 크리스마스’ ‘처녀들의 저녁식사’ ‘신라의 달밤‘ ‘킬러들의 수다’ ‘아라한 장풍 대작전’ 등 디자인.
김혜진은
1971년 서울생. 홍익대 시각디자인과 졸업. 1995년 광고디자인사 ‘꽃피는 봄이 오면’ 설립. 2000년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박하사탕’으로 영화 포스터 시작. ‘집으로’ ‘파이란’ ‘오아시스’ 디자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