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정근 감독

“경기가 끝난 뒤 동문 30여명과 함께 호프집에서 오전 2시까지 뒤풀이를 했습니다. 선수들이 너무 고맙고, 자랑스럽습니다.”

1무 199패 이후, 27년 만에 감격적인 첫 승을 올린 서울대 야구팀 탁정근(37) 감독은 승리의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목소리로 “우연이 아닌 노력으로 거둔 결실이라 더 기쁘다”고 말했다. 고시와 취업 준비 등으로 공부하기도 바쁜 서울대 야구 선수들은 매주 3차례씩 오후 4시부터 해질 때까지 굵은 모래가 깔린 운동장에서 무릎이 까질 만큼 강한 훈련을 했다. ‘1승’에 대한 강한 집념으로 여름방학 때도 거의 매일 나와 오후 3시부터 밤 9시까지 땀을 흘렸다. 이 모든 훈련의 시간엔 보수 한푼 받지 않으며 팀을 이끈 탁 감독의 땀방울이 함께했다. 동문회도 지난 1월 500만원을 내놓으며 2주일간의 제주도 전지훈련을 지원했고, 수백만원짜리 피칭 머신을 기증하기도 했다.

서울대 체육교육학과 86학번인 탁 감독이 야구와 인연을 맺은 것은 같은 학과 82학번 선배인 황대현(41·사업)씨 때문이었다. 대학입시를 앞두고 황씨에게 한 달여간 야구 실기 과외를 받은 탁 감독은 “과외비를 받지 않을 테니 입학하면 야구팀에 들라”는 제안을 받았다. 야구 명문인 배명고를 다닌 탁 감독은 야구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쉽게 약속했다. 학부 4년간 탁 감독은 중견수를 맡아 100m를 11초에 주파하는 빠른 발로 그라운드를 누볐다. 하지만 탁 감독은 선수 시절에도 1승의 짜릿한 감격을 맛보지 못했다.

1999년 코치로 다시 서울대 야구팀과 공식적 관계를 맺은 탁 감독은 2002년부터 감독을 맡아오고 있다. 탁 감독은 “무보수 감독이지만 오랜 세월 선후배들이 쌓아온 전통을 이어나가고 있다는 생각에 큰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훈련 땐 호랑이 같지만, 한 달에 한 번씩 선수들에게 삼겹살과 소주를 먹일 땐 따뜻한 ‘큰형’이다.

탁 감독은 서울 종로에 있는 경운학교(특수학교)의 체육교사로 재직 중이다. 군 복무시절 종교활동을 통해 장애인들의 어려움을 목격한 뒤, 특수체육을 전공하기로 결심했다. 현재 박사과정을 수료한 상태다. 그는 1993년 개포중을 시작으로 여러 학교 체육교사로 근무했지만 장애 학생들을 가르쳐 운동능력이 향상되는 것을 볼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탁 감독은 “서울대 팀에 부임할 때 내세웠던 1승 목표가 생각했던 것보다 빨리 이뤄져 다소 허탈하다”면서도 “내년에 5명이 졸업해 선수가 10명밖에 안 남기 때문에 신입생을 잘 받아야 할 텐데…”라며 조바심을 냈다. 이번 가을 학기부터 서울대 체육교육과 전공과목인 ‘야구실기’에 강사로도 초빙된 탁 감독은 “서울대의 1승이 진정한 학생 스포츠를 꽃 피우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며 활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