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워싱턴에서 “정치는 결국 고고학(考古學)의 일종”이라는 냉소가 떠돈다. 존 케리 민주당 대선후보의 베트남전 무훈 공방으로 대선유세가 ‘과거사 따지기’의 진흙탕에 빠진 후, 유세는 ‘과거를 파헤치고 또 파헤쳐라. 그러면 상대방에게 결정타를 가할 무엇인가가 나올 것이다’라는 식으로 변질돼 갔다. 긍정적·미래지향적인 메시지로 경쟁하자던 양당의 초기 다짐은 퇴색해 버렸다. 선거 전문가들은 “상대방을 헐뜯는 부정적인 선거유세야말로 가장 효과적인 전략”이라고 자조했다.
미국 정치의 시계가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35년 전을 가리키고 있는 동안, 양당은 모두 패자였다. 사실 여부가 정확히 밝혀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케리 후보의 신뢰도에 손상이 갔고, 조지 W 부시 대통령 역시 음모론의 주인공으로 비난받았다. 양당 또는 관련 단체들의 주장을 더 이상 믿을 수 없게 된 유권자들은 ‘진실’과 ‘주장’ 사이에서 혼돈에 빠졌다. 사실확인(factcheck.org)이라는 단체가 논란 대상이 된 주장을 비교 분석해 수시로 올리는 보고서가 인기를 끌기도 했다.
그러나 공방의 내용이라는 것은 치졸하기 짝이 없어서, 케리가 훈장 받은 무공을 세운 날 총알이 날아다녔네 아니네를 따지느라 며칠이 갔고, 케리가 입은 부상이 심각했네 아니네를 두고 한참을 싸웠다. 이 싸움이 하도 격렬해서 마치 미국사회가 1960~70년대의 베트남전쟁 시절로 되돌아간 듯했다. 미국이 이라크에 14만명, 아프가니스탄에 3만명의 군인을 주둔시키고 전쟁 중인 나라라는 ‘현재’도 잊은 것 같았다.
‘진실을 위한 순찰정 참전용사들의 모임’이라는 단체가 촉발시킨 이 공방이 삽시간에 이토록 뜨겁게 타올랐던 것은 베트남전이 미국인들에게 여전히 ‘살아 있는 과거’이기 때문이다. 연인원 250만명이 참전, 5만8000명이 목숨을 잃고 30만명이 넘는 부상자를 낸 전쟁이었다. 참전용사 가족들의 수까지 생각하면 베트남전은 너무나 많은 미국인들에게 아직도 ‘현실’이며 ‘아픔’이다.
국가의 부름에 따라 참전했으되 귀국했을 때는 반전시위의 물결 앞에 죄인이 돼야 했던 참전용사들의 해묵은 분노가 타올랐다. “이제는 사실을 바로잡아야 할 때”라며, 제각각 다른 진실을 증언하는 참전용사들의 목소리는 똑같이 울분에 차 있었다.
한 칼럼니스트는 16세기 영국의 군인이자 탐험가, 시인인 월터 롤리 경이 ‘세계사’ 집필을 중도에 포기한 이유를 설명하며, 역사의 진실을 따지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일인가를 이렇게 지적했다.
“롤리 경이 반역 사건에 연루돼 옥중에서 ‘세계사’를 집필하던 어느 날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 창밖을 보니 교도관들이 언쟁을 벌이고 있었다. 사태가 잠잠해지고 나니 바닥에는 한 사람이 죽어 넘어져 있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달아나 버린 후였다. 그러나 왜 싸웠는지, 누가 싸움을 시작했는지, 누가 그를 죽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롤리 경은 이때 세계사 집필을 포기해 버렸다.”
불과 35년 전의 일을 둘러싸고 벌어진 이 논란은 여전히 많은 국민들에게 현실이나 다름없는 과거사를 들추는 것이 얼마나 무모하고 소모적인 일인가를 보여주는 사례였다.
정치적 목적이 개입된 진실규명 논란은 진실을 밝히기보다는 분노를 자극했고, 정의를 세우기보다는 베트남전으로 분열됐던 해묵은 상처를 들춰내 또 다른 분열을 만들어냈다. 결국 가장 큰 피해자는 미래를 생각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을 과거사 따지기에 낭비해야 했던 국민들이었다.
( 강인선 워싱턴 특파원 insun@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