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봉달이가 짊어졌던 짐을 내려줘야 한다.” 30일 새벽(한국시각) 열린 아테네올림픽 마라톤이 한국 육상계에 던지는 메시지다. 이봉주(34·삼성전자)는 96애틀랜타올림픽 이후 8년 만에 한국에 메달을 안겨줄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14위에 머물렀다. 기록은 2시간15분33초. 아테네의 험난한 클래식코스와 서른넷이라는 나이, 상대적으로 처지는 스피드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당연한 결과’였다.
이봉주의 전략은 선두권에 붙어 18~33㎞ 구간의 오르막을 통과한 뒤 막판에 스퍼트를 한다는 것이었다. 예상보다는 덜 더웠던 날씨에다 스피드가 좋은 유럽 선수들이 일찌감치 치고 나가는 바람에 계획이 어긋났다. 반델레이 데 리마(브라질)가 20㎞를 지난 뒤 독주하자 스테파노 발디니(이탈리아) 등 4~5명이 무리를 지어 그 뒤를 따랐다. 이때부터 이봉주는 지치기 시작했다. 그는 레이스 후 “26㎞쯤에서 선두권에서 떨어지자 그때부터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선두 10여명의 25~30㎞ 구간 기록은 15분30~40초 안팎, 이봉주는 16분13초였다. 스피드에서 애당초 열세인 데다 예상보다 빨리 처지는 바람에 지구력이라는 자기의 장점을 살릴 기회를 잡지 못했다.
이봉주 스스로는 “앞으로 진로를 감독과 상의해 보겠다”고 밝혔지만 은퇴를 고려해야 할 시점이 된 것 같다. 그는 2001년 보스턴마라톤 우승 이후 국제대회에 입상한 적이 없다. 사실 96애틀랜타올림픽 은메달 획득 이후 8년간 한국마라톤의 자존심을 지켜준 것도 대단하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문제는 그의 뒤를 이을 선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번에 2시간16분14초의 기록으로 17위를 한 지영준(23·코오롱), 국제대회 경험이 적으면서도 2시간21분01초로 완주(41위)한 이명승(25·삼성전자)에게 기대를 걸어야 할 만큼 선수층이 얇은 게 한국 마라톤의 현실이다. 일본은 여자마라톤 우승에 이어 남자부에서도 5,6위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