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동북공정(東北工程)’의 고구려역사 침탈 공작에 대한 한국민의 분노가 치솟자 중국은 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 자칭린(賈慶林)의 방한에 앞서 외교부의 아시아 담당 부부장 우다웨이(武大偉)를 한국에 파견했다. 그러나 그와 한국 외교통상부의 5개항 ‘구두 양해’는 자칭린의 방한에 앞서 한국 국민과 정부의 비판 예봉을 무디게 하려는 길안내일 뿐 아무런 내용이 없다.
어느 항목에도 2005학년도 중국교과서에 ‘고구려가 중국의 동북지방정권’이라는 고구려역사 왜곡 침탈(동북공정)을 폐기하고 수록하지 않겠다는 항목은 없지 않은가? 동북공정 이전의 ‘고구려는 한국역사에 속한다’는 원상회복 약속은 없지 않은가? 겨우 ‘고구려사가 양국 현안임을 유념한다’ ‘학술교류를 하자’ 등 외교적인 허사(虛辭)뿐이다.
중국 정부와 사회과학원은 결코 ‘고구려역사 침탈’에 성공할 수 없다. 역사적 진실이, 고구려는 한국민족의 옛 독립국가였지 중국의 지방정권이 전혀 아니었기 때문이다.
첫째, 고구려 역사의 귀속문제는 ‘계보사(系譜史)’의 문제인데, 한국사에서는 고조선-부여-고구려-발해-고려로 이어지는 계보의 명료한 증거가 매우 많은 반면 중국사에는 없다. 예컨대 중국사서 〈후한서(後漢書)〉 예전(濊傳)에서조차 “예·고려(高麗·고구려)·옥저는 모두 조선(朝鮮·고조선) 땅이었다”고 기록하지 않았는가? 중국의 일부 맹동분자들은 이를 깨닫자 고조선·부여도 중국 지방정권이라고 억지 주장의 글을 쓰기 시작하니, 중국의 동북공정은 역사 침략 시도의 부끄러움만 남길 것이다.
둘째, 민족 귀속의 판별 기준이 되는 언어와 문화에서 중국사서들조차 고구려 언어는 한국어의 조상이지 중국어와는 전혀 관계없음을 기록하고 있다. 예컨대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동이전(東夷傳)은 “언어가 부여·고구려·옥저·예는 같다”고 기록했으며, 〈양서(梁書)〉 백제전에서는 “백제는 언어와 복장이 고려(高麗·고구려)와 같다”고 기록하지 않았는가?
셋째, 고구려의 국명이 오늘날의 ‘코리아’이므로 중국의 고구려사 침탈은 세계 속에서 완패하게 되어 있다. 우선 중국사서와 중국인들이 수(隋)·당(唐) 때도 고구려를 ‘고려’라고 불렀고, 현재의 한국도 ‘고려’라고 호칭하고 있지 않은가? 이미 당시부터 돌궐(투르크) 민족과 유연(아발) 민족도 고구려를 ‘코리’ 명칭으로 서역·중앙아시아·아나토리아·발칸·라인강 유역 서양까지 전파했다. 고구려를 계승한 ‘고려’의 국명은 원래 ‘후고구려(後高句麗)’였으며, 고려는 ‘코리아’를 아랍세계와 서구세계에 전파하였다. 전세계가 한국을 ‘코리아’(고구려·고려)로 잘 인식·호칭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의 고구려(코리아) 침탈 시도는 세계 속에서 반드시 실패할 것이다.
넷째, 중국 25왕조의 옛 정사인 〈이십오사(二十五史)〉의 방대한 문헌이 고구려를 중국사가 아닌 ‘외국의 역사(外史)’, ‘동이의 역사’로 분류해서 한국사의 일부임을 명료히 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의 ‘고구려역사 침탈’은 자기역사 문헌의 무게에 치여 반드시 실패하게 되어 있다.
중국도 약 50년 간 초기에는 고구려가 한국역사에 속하고 중국사에 속하지 않음을 잘 알고 존중했다. 이제 중국은 개혁·개방정책으로 국력이 좀 커지자 패권주의 유혹에 빠져서 고구려역사 침탈, 패권주의 노선을 채택하려 하나, 이것은 반드시 실패하여 전 인류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중국사회과학원은 ‘과학’으로 다시 돌아와서 ‘고구려역사 왜곡 침탈’ 공작을 전면 즉각 중단 폐기하라.
한국 국민과 정부는 중국의 ‘고구려역사 침탈’이 고조선·부여·발해·고려 역사까지 왜곡 침탈하는 침략공작임을 인식하고, 민족과 조국역사를 지키는 ‘고구려역사 지키기’의 지극히 정당한 투쟁을 조금도 늦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
(愼鏞廈·한양대 석좌교수·한국 사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