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며칠 전, 이름난 냉면집을 찾았다가 사람이 많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40대 초반의 한 사람이 내 앞에 불쑥 나타나 “선생님! 저 ○○학번 아무개입니다”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반가운 표정이 넘쳐흘렀다. 때마침 차례가 된 번호표를 갖고 있던 그는 자신의 것을 나에게 억지로 쥐어 주며 자리를 잡으라고 성화였다. 매우 흐뭇했다. 냉면은 그날 더할 나위 없이 맛있었다.
일행 중 누군가 물었다. 요즘 대학생들은 어때? 그들도 나이 들면 저런 제자가 될까? 지금 대학생들이 20년 전의 대학생들과 같은 행동을 하길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고 나는 답했다. 학과 없이 학부제로 운영되는 대학의 제도 아래에서 복수전공을 하며 4년 내내 성적관리에 열중해야 하는 오늘의 대학생들과, 취직시험 한 번에 평생직장을 얻었던 그때의 대학생들이 같을 수는 없는 것이다.
누구나 각자의 시대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한다. 자신의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 모두에게는 작게는 최선을 다해 살아온 가족사와 크게는 격동기를 힘들게 살아온 한민족사의 모든 것이 함축되어 있다. 과거사를 정리한다고 한다. 과거의 어려운 시대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던져야만 했던 우리의 수많은 아버지들의 몸부림 역시 그 시대의 아픔과 함께, 한 번쯤은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이진성 연세대 불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