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달콤한 위로보다는 쓰라린 각성(覺醒)으로 성장한다. 평범한 대중이라면 스크린에서까지 그 차가운 현실을 되새김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고, 일관되게 그들을 위한 영화를 만들어왔다. 그에게 영화는 ‘각성’이 아니라, 지치고 힘든 현대인들을 위한 ‘2시간짜리 위로’다. 그리고 이번엔 톰 행크스와 그 작업을 함께했다. 바로 ‘터미널’(The Terminal)이다.

빅터 나보르스키(톰 행크스)는 동유럽의 크라코지아라는 나라에서 생전 처음 미국 여행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가 뉴욕 JFK공항에 도착한 순간 크라코지아에는 쿠데타가 일어나고, 나보르스키의 여권은 휴지조각이 된다. 정권이 전복된 나라 여권을 미국 정부가 인정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 ‘유령국가’의 ‘유령국민’이 된 나보르스키는 미국으로 들어갈 수도, 조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게 된다.

한정된 공간을 벗어날 수 없는 ‘공항 노숙자’ 신분으로 영어도 못하고 돈도 한푼 없는 이 동유럽 여행자는, 이제 생면부지 뉴욕 공항에서 ‘미아의 삶’을 시작한다. 길어야 며칠이라고 생각했던 그 시간은 이제 계절이 세 번 바뀌며 흘러간다.

영화의 매력은, 감독의 의도를 유감없이 실행하는 톰 행크스로부터 비롯된다. 전작 ‘캐스트 어웨이’에서 ‘혼자 놀기’의 진수를 보여준 이 할리우드의 희귀한 개성은, 아무도 자신을 환영하지 않는 공간에서 인간이 어떻게 적응해 나가는지를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터미널’은 인간 진화에 대한 생태학적 보고서다. 영어라고는 자기가 묵을 호텔 이름만 앵무새처럼 되뇌는 수준이고, 1달러가 없어 패스트푸드점의 가장 값싼 햄버거도 사먹지 못한다.

하지만 짐을 싣는 카트 하나를 제자리에 꽂아 놓으면 25센트짜리 동전이 튀어나온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노동을 통해 ‘웰빙 버거’를 살 때, 그의 더듬거리던 영어가 스튜어디스 아멜리아(캐서린 제타 존스)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수준으로까지 ‘진화’할 때, 관객은 그의 ‘발견’에 공감하고 함께 ‘환호’한다.

무력해보이는 나보르스키가 비인간적 공항 책임자 스탠리 투치(프랭크 딕슨)에게 저항하면서 순간 순간 작은 승리를 이뤄낼 때, 관객은 삭막한 도시에서 밥벌이를 위해 안간힘을 쓰는 자신을 포개놓는 것이다.

이 영화의 볼거리는 공항이다. 스필버그는 9·11 이후 보안이 강화된 실제 공항에서 촬영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판단, 20주 작업을 거쳐 캘리포니아 팜 데일에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실제 크기 공항을 제작했다.

스필버그가 영화 무대를 ‘공항’으로 정했을 때 그 의도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현대 사회에서 공항은 삶의 축소판이면서 일종의 ‘섬’이다. 수천명이 입국과 출국을 위해 정신없이 질주하지만, 불시착한 동유럽 미아에게는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곳이다. 촘촘한 감시 카메라와 칸막이, 그리고 9·11 이후 더욱 강화된 검문검색이 이 감옥 같은 공간을 요약한다. 그런 자본주의의 ‘섬’에서 스필버그와 톰 행크스는 관객의 공감과 연민을 불러일으키며 휴머니즘의 모닥불을 지핀다. 비록 그것이 인위적 감동에 불과할지라도. 27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