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터키 제1의 도시 이스탄불과 수도 앙카라를 취재하면서 두 번 놀랐다. ‘1인당 국민소득 3383달러’ 같은 막연한 상식만 갖고 이스탄불을 방문했다가는 ‘이 나라가 과연 1인당 국민소득이 5000달러도 안 되는 나라 맞나?’ 하고 놀라게 된다. 1600여년간 제국의 수도로 군림했던 이스탄불은 풍부한 문화 유산과 함께 터키 경제력의 절반이 집중된 국제도시여서 보는 이들을 압도한다.
하지만 화려한 이스탄불을 떠나 터키의 수도이자 제2의 도시 앙카라를 방문했을 때는 이런 의문이 들었다. 한국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근대국가의 틀을 먼저 갖춘 이 나라가 어떻게 하다 한국보다 경제 발전이 뒤졌을까?
터키는 1923년 공화국으로 출발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편에 서는 바람에 제국의 영토 대부분을 상실했지만, 그래도 한반도의 3.5배, 남한의 8배쯤 된다. 터키 공화국을 세운 초대 대통령이자 국부(國父)인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는 정치에서 이슬람교를 분리하는 세속주의를 선포하고 1920년대부터 서구식 근대화를 추진했다. 근대국가의 출발도 터키가 한국보다는 앞선 셈이었다. 실제로 한국이 1996년에야 가입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를, 터키는 1961년에 가입했다.
하지만 현재 터키는 OECD 회원국 중에서 경제 성적이 바닥이다. IMF(국제통화기금) 지원을 18번째 받는 IMF의 단골 환자다. 최근 들어 인플레이션이 20% 이하로 내려가긴 했지만 연 60~100%에 달하는 살인적 인플레이션을 겪는 바람에 돈 가치가 뚝뚝 떨어져 터키 돈 100만리라가 한국 돈 1000원이 채 안 된다.
영국 유학을 다녀온 터키의 한 엘리트 젊은이를 만나 “현재 터키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이냐”고 물어봤다. 살인적 인플레이션도, 허약한 경제체질도 아니고, 그 젊은이는 대뜸 “정치적 부패와 불안정”이라고 대답했다.
한국과 비슷하게 1960년대에 대규모 학생 시위와 군부 쿠데타를 경험한 터키는 1970년대에 들어서는 극심한 좌·우익의 대립을 겪었다. 유혈 싸움까지 벌어질 정도로 내부 분열이 극심했다. 그 바람에 치안은 극도로 불안하고 수출은 부진한 채 ‘잃어버린 10년’ 세월을 보냈다. 1970년만 해도 터키의 1인당 국민소득은 한국의 2배 수준이었다. 하지만 1980년 터키는 한국에 뒤졌다.
터키는 1980년대 초 수출 주도의 자유시장 경제정책을 지향하면서 경제가 다소 회복됐었다. 하지만 그 후에도 계속되는 연립 정부로 정치는 불안했고, 외국인 투자는 저조했으며, 살인적 인플레이션과 널뛰기 경제를 되풀이해왔다. 최근 들어 터키 경제가 다소 안정세를 보이는 것도, 지난 2002년 총선에서 단독 정부가 수립된 정치적 안정 위에 가능해진 것이다.
우리는 미국이나 일본, 유럽 선진국에서 교훈을 얻으려 하지만, 눈을 돌려 터키가 우리에게 주는 역사의 교훈도 적지 않았다. 이념 대립으로 극심한 내부 갈등을 겪었던 터키의 70년대처럼, 우리 역시 비생산적인 이념 대립과 분열로 몇 년을 허송세월하다가는 언제 후진국으로 밀려날지 모른다.
터키는 1000년 제국의 찬란함도 간 곳 없이 불과 30년 세월 만에 한국에도 경제 성적이 뒤졌다. 그러니 30여년에 불과한 한국의 짧은 성공이 언제까지나 우리 곁에 머물러 있어줄 것으로 자만하고 착각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姜 京 希 파리 특파원 khkang@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