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는 커다란 바위같이 ‘무생물’화된 이름, ‘이순신’에 숨결을 불어넣었다. 책을 읽은 사람들은 세종로 한 가운데 서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의 얼굴 표정에 처음으로 궁금증을 갖게 됐다. 소설 속 ‘구국의 영웅’은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인간적 고뇌와 흠결을 안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빛이 났다.
다음달 4일부터 방송될 KBS 1TV 대하사극 ‘불멸의 이순신’이 대중과의 접점을 찾는 지점도 마찬가지다. 연출자 이성주 PD는 “드라마 속 이순신 장군의 전체적인 감정선은 ‘칼의 노래’를 따른다”고 했다.
이 드라마는 ‘칼의 노래’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그간 이순신 장군의 초라한 ‘대립항’에 불과했던 원균 장군에 대한 적극적 해석도 관심을 끄는 부분이다.
육중한 100부작 사극을 양 어깨에 짊어질 두 주인공 김명민(이순신)·최재성(원균)을, 18일 오후 촬영현장인 용인 민속촌에서 만났다. 극 초반, 두 장군은 절친한 선후배 사이로 그려진다.
고뇌하는 영웅, 이순신 장군의 김명민
“이순신 장군의 갑옷 깊이를 느끼기 위해 다가가고 있는 중입니다.” 김명민은 자못 심각한 첫마디로 말문을 열었다. 올해 초 막을 내린 ‘꽃보다 아름다워’에 출연했을 때보다 앙상해진 몸매였다.
그의 가방에는 ‘칼의 노래’가 들어있었다. 웃으며 “앞으로 1년 이상 제 인생의 교과서가 될 것”이라고 한다. 4차례 이 책을 완독한 그는 요즘도 하루 24시간 이 책을 옆에 끼고 다니고 있다. “섬세한 감정이 무뎌질 때마다 소설 속 이순신 장군을 찾아갑니다. 읽을 때마다 느낌이 달라요.”
이 드라마는 4회에서 이순신 장군의 사망 장면을 내보낸다. 김명민은 이미 이순신 장군이 갑옷을 벗은 채 수군을 지휘하다 적들의 총탄에 목숨을 잃는 모습을 촬영했다.
“당시, ‘죽음을 미리 예견하셨던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두려움 없이 편안하게 눈을 감는 장면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소설에 기반해 ‘왜군과 선조 양측의 칼 사이에서 이제 괴로워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을 상상했어요.”
타고난 무장(武將), 원균 장군의 최재성
“옛날 교과서 속에 그려지던 원균 장군이었다면 맡지 않았을 거예요. 작가 분께서 원균 장군에 대해 ‘산 같은 사람으로 보면 된다’고 하더군요.” 최재성은 “임진왜란 당시, 우리가 완전히 바다를 장악하는 과정에서 원균 장군도 한몫을 담당했을 것”이라며 “그에 대한 적극적인 재해석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최재성은 이 드라마에서 원균 장군은 “악역이 아니다”라고 못박았다.
“원균 장군이 북방에서 여진족들과 맞서 싸우던 당시를 서술한 소설을 봤는데 기존에 알려진 이미지와는 정반대였어요. 최소한 그는 비겁한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지장(智將)은 아니지만 용장(勇將)이라고 할 수 있겠죠.”
80년대를 풍미한 청춘스타였던 최재성은 어깨에 힘을 빼고 차근차근 배역에 잠겨들 줄 아는 중견이 돼 있었다. 최근 ‘천둥소리’, ‘제국의 아침’, ‘장길산’ 등 사극에 잇따라 출연하고 있다. “제대로 된 한국의 연기자라면 당연히 사극을 해봐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