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 신기남(辛基南) 의장이 19일 공식 사퇴하기로 한 가운데, ‘신기남 이후’는 이부영(李富榮) 의장체제로 결론이 났다. 당내 당권파와 친노(親盧) 직계 그룹은 18일 밤 긴급 회동을 갖고, 당초 구상했던 한명숙(韓明淑) 의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비상대책위원회 체제안을 포기하고 이부영 의장체제를 받아들이기로 합의했다.

이부영 체제의 출범은 당 내 세력관계의 변화를 의미한다. 당 의장(신기남)과 원내 대표(천정배) 등 당의 투톱을 장악했던 ‘천·신·정’ 체제의 한 축이 무너지면서, 상대적으로 김근태(金槿泰) 보건복지부 장관과 가까운 이부영 위원이 후임 의장이 됐기 때문이다. 천·신·정은 천 원내대표와 신 의장, 정동영(鄭東泳) 전 당의장(현 통일부 장관) 등을 일컫는다.

세 사람은 DJ정권 때부터 민주당 내 소장개혁파로 정풍(整風) 운동을 주도하며 정치적으로 같은 길을 걸어왔고, 4·15총선 이후에도 ‘GT계’ 등 비당권파와의 원내대표 경선에서도 승리하면서 당권파를 형성했다. 이부영 의장체제가 등장함에 따라 당 내 세력관계는 ‘천·신·정’ 독주체제에서 ‘GT’계가 상당히 힘을 회복하며 양대 계파가 경쟁하는 구도로 변화하게 됐다.

신 의장의 거취가 사퇴로 가닥이 잡힌 후 각 정파가 신경전을 벌인 것도 이런 배경에서였다. 이번에 당권을 잡는 쪽이 내년 1~2월로 예상된 전당대회에서 확실한 우위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에서다.

현 당헌에 따르면 신 의장이 사퇴하면 차기 당 의장은 지난 1월 전당대회에서 정동영·신기남에 이어 3위를 했던 이부영 상임중앙위원이 승계하게 된다. 그러나 천·신·정을 주축으로 한 당권파는 신 의장과 더불어 다른 상임중앙위원도 모두 동반사퇴한 후,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 전당대회까지 집단지도체제로 운영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문희상(文喜相) 의원을 주축으로 하는 친노 직계 그룹도 이 구상을 지원하면서 이 시나리오대로 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이부영 위원이 “원칙대로 순리대로 해야 된다”며 승계의사를 굽히지 않으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정동영 전임의장이 사퇴할 때도 ‘한명숙 카드’가 거론됐는데 신 의장이 ‘당헌당규대로’ 원칙을 강조하며 승계했던 상황이 재연된 것이다. 이 위원과 함께 한나라당을 탈당했던 김부겸·안영근·김영춘 의원 등 이른바 ‘독수리 5형제’는 ‘이부영 체제’에 가장 적극적이었으며, ‘GT계’도 이 위원을 지원했다.

한나라당 탈당파나 GT계는 과거 정통 재야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결국 신 의장, 천정배(千正培) 원내대표 등 당권파와 문희상 의원 등 친노 직계 중진들은 18일 밤 시내에서 긴급 회동, “비대위안을 계속 고집할 경우, 자칫 당 내 갈등으로 비칠 수 있다”며 이부영 의장체제를 전격 수용했다.

이부영 체제 출범은 그러나 대외 정책 노선면에서는 별다른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당장 최대 현안인 ‘과거사 청산 문제’만 해도 이부영 위원은 “박근혜 대표의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 문제로 한나라당이 반대할 경우, 박 전 대통령을 대상에서 빼는 한이 있더라도 규명작업을 소홀히 할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여왔다.

지난 총선에서 낙선한 이부영 위원은 열린우리당 의장직 수행을 통해 정치적 활로를 마련해야 하는 입장이고, 그래서 노 대통령의 정책 노선 실현에 총력을 쏟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