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글로벌 기업들은 상반기 실적을 중간 점검하고 경기를 가늠하면서 내년도 사업계획과 필요 예산 규모를 따져보느라 매우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다. 이때 ‘시장의 투명성’이 초점으로 부각된다. 법규나 정책, 시장규제를 감안하여 제대로 된 예측이 가능해야 현실적인 사업계획이 만들어진다.
외국인 투자 결정에서 시장 개방성보다 더 중요한 것이 투명성이다. 시장이 차라리 덜 개방되었다 해도 예측을 가능케 하는 투명성이 있다면 시장의 매력에 합당한 투자를 감행할 수 있다. 한때 두 자리 숫자 경제성장을 거듭할 때에는 안보문제가, 자주의식이 강해지면서 반외세감정이, 노동운동이 거세지면서 과격노조가 외국인 투자를 막는다고 하지만, 사실 투명성 부족만큼 일관되게 외국인 투자 의욕을 조용히 침몰시키는 경우도 드물다. 투명성이 부족하면 글로벌 기업은 다른 나라로 투자를 돌릴 것이고, 중소 토종기업조차 해외로 탈출을 꿈꿀 것이다.
투명성은 국내에 진출한 외국인 경영진의 사업 판단을 돕고 본사 설득에 큰 도움이 된다. 본사는 다른 시장과 한국 시장을 놓고 비교한다. 위험도가 낮고 성장 가능성이 큰 시장에 투자우선순위를 부여하는데 이때 투명성은 결정적이다. 시장 잠재력이 엇비슷할 때 투자 결정은 투명성에 따라 결판이 나는 수가 많다.
애로사항이 있다면 민원실에서 혹은 외국인투자상담센터에서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지 않느냐고 말한다. 그러나 문제를 매번 또 하나의 창구를 통해 풀어나가는 일 그 자체가 또 하나의 일이 된다. 그것은 마치 잘못된 교통신호체계를 그대로 두고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친절히 뛰어다니며 해결해 주겠다는 식이 되어 안타깝다는 말이다.
투명성을 위해 법규나 제도를 개선시켜야 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일은 집행과정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의식과 태도가 객관화되고 자의적인 판단을 하려 들지 않을 때 비로소 확보된다. 매우 동질적인 사회에서는 말없이 눈빛 하나만으로 상호 기대를 교감함으로써 일이 풀린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적당히 모든 문제를 푸는 습관에 젖어 있다 보면 투명성 부족을 느낄 수가 없다.
투명한 사업여건이란 무엇인가.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정해진 절차에 따르면 누구라도 신속하게 사업을 개시할 수 있고, 시장경쟁의 규칙이 누구에게나 분명하다. 사업을 추진하는 데 필요한 어떤 법규의 시행 규칙을 해석하는데 담당자의 주관적인 해석과 판단이 불필요하다. 담당 공무원이 바뀌거나 심지어 정권이 바뀌어도 계류 중인 사안이나 인허가 업무가 원래 예상된 일정대로 마무리된다. 이 정도의 투명성이 되어야 동북아 허브의 기초가 비로소 마련되는 셈이다.
이미 국내에 진출한 글로벌 기업들이 투명성에 만족하고 성공해야 새로운 글로벌 기업들이 확신을 갖고 투자 결단을 내릴 수 있다. 투명성이 풍부한 시장이라는 아름다운 숲을 만들어 내야 한다.
(이기섭·한국릴리제약 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