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하는 사람이 기회를 잡는다. 이원희(23·한국마사회)가 바로 그렇다. 그는 용인대에 다니던 2002년 여름까지 66㎏급 선수였다.
그해 초 세계적인 권위를 갖는 파리오픈 66㎏급서 은메달, 오스트리아오픈에선 우승을 하는 등 유망주로 꼽혔다. 하지만 국내 대회에선 뚜렷한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체중 감량이 항상 골칫거리였고, 김형주라는 강자가 버티고 있었기 때문. 결국 2002년 가을 체급을 하나 올리는 모험을 했다. 물론 73㎏급 무대 역시 쉽지는 않았다. 2000시드니올림픽서 4강에 들었던 선수이자 모교 보성고의 선배인 최용신이 버티고 있었다. 작년 초까지만 해도 국내 랭킹 2~3위 정도에 머물렀다. 그런데 대표팀 전지훈련을 겸해 유럽 오픈대회에 출전할 예정이었던 최용신이 갑작스러운 장염 탓에 국내에 남으면서 기회가 왔다. ‘대타’로 나선 이원희는 파리오픈서 2위를 하더니 곧이어 열린 헝가리오픈서 우승하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했다. 이후 고교 은사이기도 한 권성세 대표팀 감독의 지도 아래 ‘전사’로 거듭났다. 빗당겨치기를 비롯, 업어치기, 발뒤축걸기, 허벅다리후리기 등 유도의 모든 공격을 완전히 몸에 익혔다. 특히 잡기 싸움을 할 때 오른손과 왼손을 모두 잘 써 어떤 유형의 상대도 자신의 스타일대로 요리해 나갔다.
이젠 이기는 일만 남았다. 대구유니버시아드와 세계선수권, 아시아선수권과 전국체전, 대통령배대회 우승을 휩쓸었다. 국내외 대회 48연승. 윤동식(한국마사회 플레잉코치)이 갖고 있던 한국 기록(47승)을 갈아치웠다. 화끈한 기술로 ‘한판승의 사나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이원희는 평소 대표팀 권 감독이 “타고난 놈이 저렇게 열심히 하는데 어떻게 예쁘지 않겠어”라고 말할 만큼 연습 벌레다. 또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땀의 가치와 승리에 대한 믿음. 이원희를 강하고 담대하게 만드는 반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