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여성들을 신데렐라의 단꿈에 빠져들게 했던 SBS 드라마 ‘파리의 연인’이 15일 20부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방영 직전, 네티즌들 사이에 불붙은 결말에 대한 논란 속에서도 마지막회 시청률은 57.4%를 기록했다. 텔레비전을 갖고 있는 사람 100명 중 57명이 봤다는 이야기다. 평균 시청률은 41.1%였다.
삼각관계·출생의 비밀을 곁들인 뻔한 이 ‘신데렐라 스토리’는 수많은 화제 못잖게 과제도 남겼다. 리얼리티에 대한 고민 따위 저만치 털어내고 제대로 된 ‘판타지’를 공급하겠다는 제작의도는 각박한 현실 속 시청자들 요구와 맞아떨어졌다. 드라마의 전 과정이 “결국 태영이 쓴 시나리오 속에서 나온 내용이었다”는 최종회 1차 대본 내용이 알려지자, “환상을 갖게 해달라”며 격렬하게 반응했던 시청자들 모습에 “대한민국의 씁쓸한 자화상이 겹쳐진다”고 말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먼저 화제. 시청률 고공행진과 함께 “이 안에 너 있다”, “애기야 가자” 대사는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최고의 유행어가 됐으며, “~했나?”, “~하지”체로 끝나는 박신양의 권위적인 말투도 유행했다. 박신양·이동건·김정은의 옷차림은 그 자체로 새로운 패션의 흐름을 이끌었다. 기주가 태영에게 사랑을 고백하며 불렀던 노래 ‘사랑해도 될까요’는 휴대전화 벨소리와 통화연결음 시장을 석권했다.
그러나 이런 화려한 성적표 뒤로, ‘파리의 연인’이 한국 드라마사(史)에 남긴 과제와 그늘은 우울하다.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드라마 전체가 상업적인 간접광고(PPL)의 강력한 영향을 받았다. GM대우·복합상영관 CGV·의류업체 PAT·휴대폰업체 팬텍&큐리텔 등 수많은 광고주가 영업장·상품·로고 등을 통해 시청자에게 직접 전달됐다.
시청률이 올라가고 인기가 치솟을수록 PPL은 극성을 더했다. 남자 주인공 기주가 부른 ‘사랑해도 될까요’는 휴대폰 컬러링으로 곧장 상업화됐고, 여주인공 태영이 파자마 차림으로 ‘답가’를 부른 것도 PPL 업체인 CGV영화관이 “직원 행사인 파자마 파티를 홍보해달라”고 요청해왔기 때문이다. 공동 작가인 강은정씨는 “PPL차원에서 등장 인물 대화가 특정 매장에서 이뤄지는 것으로 설정되기도 했다. 집필과 촬영이 여러 모로 PPL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업체측은 당초 계약을 맺을 때부터 회당 몇차례, 몇분 이상 등으로 구체적인 횟수까지 명시해 PPL을 지정한다"고 강 작가는 전했다.
이는 결국, 우리나라 드라마 제작관행의 문제점과 직결된다. 방송사가 외주제작사에 지급하는 드라마 제작비는 6500~7000만원 수준이지만, 스타의 회당 출연료가 1000만원이 넘는 상황에서 제작사는 PPL을 통해 제작비를 벌충한다. 시청자들은 드라마를 보는 줄 알지만 실은 광고 대행진을 보는 셈이다.
‘초치기’ 제작 관행은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15일 밤 방영분을 15일 아침까지 촬영하고 파리에서 미리 찍어온 장면을 이어붙여 마지막회는 눈에 띄게 완성도가 떨어졌다. 김정은의 연기도 판에 박힌 듯 어색했다. 자유기고가 이근미씨는 “진짜 제대로 만들려면, 연기자들이 그 감정 그대로 갖고 파리에 가서 멋지게 엔딩을 찍어왔어야 했다. 하지만 다들 파김치가 된 마당에 거기까지 갈 수도 없고, 대충 예전에 찍은 것에, 얼기설기 붙여서 만들다보니... 볼 때 마지막회는 영 아니올시다,였다”고 아쉬워했다.
‘파리의 연인’이 남긴 과제는 바로 한국 방송계의 오랜 과제다. 지상파 방송사가 전권을 휘두르다시피하는 제작 관행을 바꿔 외주제작사가 제 값 받고 드라마를 팔 수 있는 체제와 전작제를 도입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