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기사- "LPG값도 오르고 죽어라 일해봤자 월70만원 가져가"
질문―1년 전과 비교해 살림 형편이 나아졌나요?
답―“어떻게 나아질 수 있습니까.” “월드컵 이후 계속 곤두박질치고 있어요.” “차라리 작년 이맘때가 나았어요. 내년엔 더 힘들어지겠죠.” “벌어서 혼자 용돈 쓰면 딱 알맞은 수준입니다.” “맞벌이 아내가 실업자가 된 뒤 대학생 아들 둘 다 휴학시켰어요.” “죽어라고 일하면 한 달 100만원, 보통은 70만~80만원 가져가요. 서민들은 아사(餓死) 직전이에요.”….
질문―노후생활에 대한 걱정은 어느 정도인가요?
답―“그런 거 생각할 여유 없어요.” “이 수입으로 여든 살까지 살 수 있을지 막막하죠.” “내 문제는 신경 안 써요. 자식들 시집·장가가 걱정이지.” “국민연금 안 낸다고 공단에서 택시 차압하겠다고 연락왔어요. 찾아가서 ‘나 여기서 죽어버린다’고 협박했죠. 노후요?”
여러 해 계속된 불황으로 승객이 줄고 기름값(LPG)은 올라 수입이 격감한 택시기사들이 말하는 현재와 미래다. 절대 다수가 “작년보다도 살기 힘들다”고 했고, 소수만 “빠듯하게 겨우 지낸다”고 했다. 나아졌다는 응답은 전혀 없었다. 대부분 “개인적으론 희망을 잃은 지 오래”라고들 했다. 승객과 늘 나눠온 얘기인 탓인지 망설임 없고 첨삭도 없어 보인다.
특히 대통령에게 바라는 게 뭐냐는 물음에는 격한 반응이 많이 나왔다. “경제 위기 과장이라고 엉뚱한 소리 하니 정말 문제”(서울 48세 기사), “여론이 얼마나 안 좋은지 정권은 알아야”(서울의 다른 48세 기사), “LPG값이나 좀 내려줬으면 좋겠다”(광주 45세 기사 장모씨), “승객 10명 중 9명은 국민 통합이라고 얘기한다. 치유해야 할 사람이 사사건건 편가르고, 지역감정 조장하고…. 요샌 찍어서 미안하다는 젊은이도 많다”(서울 50세 기사 임모씨)….
나라 발전에 대한 가장 큰 걸림돌에 대해서도 ‘국력을 모으지 못하는 정치’ ‘투명하지도 정직하지도 않은 정부와 기업’ ‘쓸 줄 모르고 모으기에만 혈안인 부자들’ ‘국민이 아니라 당과 자신을 위해 사는 듯한 정치인’ 등 원색적 표현이 거침없이 쏟아졌다.
근로자들이 생각하는 대안
"상대방 포용하는 문화 시급" "경제는 정부가 풀어야"
한국 사회의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층, 그리고 시정(市井)의 여과 없는 민심을 가장 많이 접하는 택시기사들은 갈갈이 분열된 국론부터 재결집해 사회 분위기를 추스르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꼽았다. 여기에 물가 잡기를 병행해 중산층·서민 경제를 안정시켜달라는 주문이다. 상당수는 정부 정책 자체가 갈팡질팡하고 불명확해 혼란을 자초한다고 지적했고, 성장위주 경제 정책으로 회귀해야 옳다는 견해도 보였다. 정치권을 완전히 물갈이하고 대통령까지 바꿨으면 좋겠다는 격한 반응도 없지 않았다.
가장 시급한 치유 대상인 국론 분열의 현장으로는 먼저 정치권이 거론됐다. 50대의 한 직장인은 “지금 정당들 사람만 바뀌었지 과거 정당 정치와 하나도 다를 게 없다”고 싸잡아 비난했다. “정치인들은 싸우지 말고 제발 국력을 모아달라. 국민들도 뭉쳐야 한다”(31세 신모씨), “정치인들이 단합돼야 경제도 풀린다”(성남 전기업체의 30대 이모씨), “중국이 성장하고 일본이 다시 서는 마당이다. 우리도 먹고 살 길, 성장 동력이 무엇인지를 찾기 위해 국론을 모아 매진해야 한다”(36세 회사원 임모씨)는 요구도 있었다.
최근 부쩍 심각해진 계층 및 이념 갈등 문제도 지적됐다. 30대의 중소기업 과장은 “상대방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자세 없이 우리 사회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며 “대통령부터 생각이 바뀌고, 기득권층의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도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울산 어느 병원의 간부는 “대통령·정부관료·국회의원과 같은 지도자들이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문제는 도처에 널렸는데 풀어가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부터 책임감을 갖고 나서라”고 주문했다.
바람직한 사회의 기본이 무엇인가에 대한 철저한 반성 없이는 개선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응답도 많았다. 30세의 한 직장인은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 최선이다. 배타주의·정실인사·지역주의와 같은 폐단을 없애고, 국가의 가치 설정과 자원배분 문제를 해결할 새 시스템을 세워야 한다. 그래야 경제도 좋아진다”고 했다. 20대 중반의 컴퓨터프로그래머 배모씨 역시 “선진국처럼 원칙이 통하고 열심히 사는 사람이 보상받는 사회로 가는 방법부터 연구하는 게 최우선”이라고 지적했다. 저소득층 샐러리맨 가운데서는 “서민들이 얼마나 열심히 힘들게 사느냐. 대통령이 잘해 서민들이 잘 살게 해야지, 우리가 뭘 어떡하냐”는 하소연도 나왔다.
나름대로 꽤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한 경우도 있다. 고양시청의 한 공무원은 “정부가 뉴딜정책처럼 대형공사를 진행해 돈을 풀어야 한다. 그래야 일자리도 늘고 소비도 증가할 것”이라고 했다. 30대의 은행원은 “경제 문제는 그래도 역시 정부가 나서서 해결할 수밖에 없다. 분배보다는 성장에 우선순위를 두고 부양책을 써 가면서 적극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가 하면 아예 희망이 없다는 절망적인 대답도 없지 않았다. 30대 중반의 한 응답자는 “희망이 없다. 외환위기 때는 외채만 갚으면 된다고 해서 금붙이도 막 내놓고 경제 살리는 분위기를 잡았다. 하지만 지금은 총체적 난국, 구조적 위기라서 포커스를 집중할 수도 없는 상황 아니냐”고 했다.
한편, ‘모르겠다’는 응답도 5명 가운데 한 명 꼴에 달해 일부 국민은 원천적 무관심, 혹은 사실상의 자포자기 상황에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